정부 美쇠고기 무원칙.편법 대응 논란 | |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7-08-06 06:09 | |
법적 근거없는 '검역 중단', '사전 해명 기회'
美측 주장 안전기준을 협상도 하기 전에 '인정'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한 '원칙없는 봐주기'식 대응이 도를 넘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입 중단 사유인 광우병위험물질(SRM)을 확인하고 정부가 내린 '검역 중단' 조치나 미국에 준 해명 기회 등은 모두 국내외 법률상 근거가 명확치않고, 검역과 유통에 각각 다른 안전성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 '검역중단'은 수입조건에 없는 조치
6일 보건의료단체연합,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민변 등에 따르면 농림부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등 검역 당국이 SRM인 척추뼈 발견을 이유로 지난 1일부터 미국산 쇠고기에 취한 '검역 중단' 조치는 현행 수입 위생조건에 없는 제재 단계다. 실제로 수입위생조건 20~21조에는 우리 정부가 검역 과정에서 수입위생조건에 맞지 않는 점을 발견하면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 당해 수출쇠고기 반송 또는 폐기처분 ▲ 당해 수출쇠고기 생산 작업장 수출선적 중단(문제가 계속될 경우 승인 취소) ▲ 수출쇠고기 수입 중단 등 세 가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검역 불합격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제재 형태로서 '검역 중단'이라는 말은 수입위생조건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또 이처럼 애매한 조치는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과도 충돌한다. 가축전염병예방법 제36조 제1항은 육류 수입업자에게 '지체 없는 검역 신청'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수입한 식육을 검역 전에 빼돌려 시중에 유통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되 검역만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힘에따라 이 법의 취지를 검역 당국 스스로 훼손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민변 소속 통상법 전문 송기호 변호사는 "검역 중단은 법률상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국민 건강과 직결된 정부의 중대한 공권력인 검역을 멈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며 "실제로는 이 건에 대한 검역을 연장함으로써 우리 정부나 미국측에 대응 시간을 더 주겠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WTO도 보장안하는 '사전 해명' 기회까지
지난주 김창섭 농림부 가축방역과장은 검역 중단 조치를 발표하면서 "미국의 원인 해명과 조치 등이 미흡하면 수입을 중단할 수도 있다"며 "수입위생조건에도 사전에 미국측에 통보해서 검토할 시간을 주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행 수입위생조건에 수입 중단 조치에 앞서 미국측에 먼저 해명 기회를 줘야한다는 규정은 없다. 다만 20조에는 '해당 작업장 수출선적 중단' 조치를 취할 경우 "이 사실을 미국 정부에 통보해 협의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고 나와있다. 반면 수입 중단 조치와 관련된 21조에는 SRM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는 등의 5가지 사례와 함께 "미국내 광우병 위험이 악화됐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만 적혀있을 뿐 사전 해명 절차에 대한 언급은 없다. 더구나 '작업장 수출 중단' 조치와 관련된 협의 기회라는 것도, 세계무역기구(WTO) 위생.검역협정(SPS)에 의거해 미국측이 우리가 취한 조치의 근거를 물어올 경우 이에 대해 '사후에' 충분한 설명을 해주라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결국 이번에 우리 정부가 미국측에 준 협의 기회는 사안의 성격, 사전.사후 시점, 해명 주체 등의 측면에서 전혀 국제 통상법과 무관한 '특별 대우'다. 송 변호사는 "미국이 중국산 등에 대한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하면서 사전에 해명 기회를 줬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고 부연했다.
◇ 정부가 美쇠고기 안전 장담..'제무덤 파기'
또 김 과장은 시중에 이미 유통된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단언하며 판매 중지, 회수 등의 조치를 검토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부측의 설명은 이렇다. 작년 1월 맺은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는 척추뼈가 SRM으로 분류돼있지만, 현행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에서는 30개월령 이하 소의 척추를 SRM으로 간주하지 않는만큼 안전하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행 OIE 지침에 따르면 미국과 같은 '광우병통제국' 등급의 국가에서 생산된 쇠고기는 원칙적으로 교역에서 연령과 부위에 제한을 받지 않고, 소의 월령이 30개월 미만이면 SRM 가운데 두개골이나 척추 등은 제거할 의무도 없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검역 중단 등 교역 문제에는 현행 한미 수입위생조건을, 전반적 척추뼈에 대한 안전성 판단에는 OIE 규정을, 따로따로 잣대로 삼으면서 국민들만 혼란을 겪고 있다. 정부의 모호한 태도는 국내 안전성 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향후 한미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상에서도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은 현재 OIE 규정을 근거로 연령.부위 제한없이 모든 자국 쇠고기 제품을 수입하라고 우리나라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이같은 요구를 방어해야할 정부는 협상도 시작하기에 앞서 스스로 현행 OIE 규정을 인용하며 일부 SRM의 안전성까지 인정하는 등 제 무덤 파기에 한창이다.
◇ '無원칙 눈치보기' 통상.위생에 모두 도움 안돼
정부의 검역과 관련된 자의적 규정 해석과 원칙없는 판단은 국민 보건과 위생을 위협할 뿐 아니라 원활한 통상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송 변호사는 "정부가 한미FTA 비준과 쇠고기 검역을 지나치게 연계하는데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며 "그러나 현재 국제 통상관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무역을 왜곡하는 '자의적 조치'인만큼 오히려 이같은 원칙없는 대응은 실질적 한미FTA 효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월 일본에서 똑같이 미국산 송아지 고기에서 척추뼈가 발견됐을 당시 일본 정부는 즉시 수입 중단 조치를 취했고, 이후 5~6개월간 미국이 재발 방지책을 제시하고 일본이 이를 점검한 뒤에야 수입 금지를 해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현재까지 미국은 일본 수출용 쇠고기를 매우 구체적 도축 매뉴얼 등 철저한 수출증명(EV)프로그램에 따라 생산하고 있다. 반면 우리 검역당국은 작년말 이후 10여차례나 명백한 수입위생조건 위반인 등뼈, 내수용 쇠고기, 갈비통뼈 등을 확인하고도 '교역의 불씨를 살리려' 필요 이상으로 유연하게 대처하고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는 등 사안 축소에만 급급하다 결국 오히려 더 큰 한미간 검역 마찰을 불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졌다.
shk99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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