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발생시 美쇠고기 수입중단' 배경과 파장

posted May 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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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5-07 16:13
여론돌파 고육책..협상결과와 배치 통상마찰 우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급기야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를 넘어서는 강력한 조치를 약속해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으면 수입을 중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은 국회에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한국 정부가 곧바로 미국 쇠고기 수입을 막을 수 없도록 돼 있어 정부의 방침이 한미 통상마찰을 야기하고 국가 대외신인도 하락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광우병 발생시 수입중단"..여론 돌리기 고육책

정운천 장관은 7일 국회 농해수위에서 진행된 '미국 쇠고기 개방 청문회'를 통해 "앞으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열린 전북도청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 역시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즉각 우선적으로 수입을 중지할 것이고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정 장관의 선언을 암시했다.

정부 뿐만 아니라 여당인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도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시 정부는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에 의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시 중단한다"고 말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따른 파문이 확산하자 당정이 여론을 돌리기 위해 보조를 맞춰 '초강수'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 수입중단 정부 권한 밖..주체는 OIE

그러나 정 장관 스스로 "통상 마찰이 발생해도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부연했듯이, 이 같은 검역 원칙은 지난달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와 배치되는 것이다.

합의문 4조에 따르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정부가 곧장 쇠고기 수입을 막을 수 없다. 추가 발생으로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 광우병 지위(현재 광우병위험통제국)를 낮출 경우에만 우리 정부는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일반 국민 역시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대목으로, '굴욕 협상' 주장의 주요 근거가 돼왔다.

또 합의문 5조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각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정부에 알리고 협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역학 조사의 주체는 미국 정부고 우리 정부는 통보만 받도록 돼 있다.

◇ 정부 "해결방법 있을 것"

이날 청문회에서 정세균(민주당) 의원은 "한미 협상 합의 내용에 없는 것을 대통령, 여당, 장관이 말하는 것은 협상 파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미 쇠고기 협상 수석대표였던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은 "안전한 쇠고기를 들여오겠다는 것이 합의조건이고, 우리 소비자들이 건강에 대해 걱정하니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며 "분쟁에 따른 협의는 양국 간에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정 장관 등 정부 측은 광우병 발병 즉시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 근거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상 조항을 들고 있다

GATT 20조 b항에서는 '인간 및 동식물의 생명.건강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적용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받은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가 앞으로 절대로 광우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없다는 게 아니라, 광우병이 나오더라도 검역 시스템상 충분히 위험을 관리할 능력이 있다는 의미"라며 광우병 발생과 직접 검역 중단을 연계하지 않는 것이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고 설명하던 정부가 '검역 주권 상실' 비난이 거세지자 통상 마찰을 감수하고 말 그대로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 통상마찰..대외신인도 하락 우려

정부는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지만, 이 특단의 결정은 이번에 타결된 수입조건과 명백히 어긋난다. 따라서 향후 미국과의 마찰 소지를 없애려면 새 수입조건이 고시와 함께 오는 15일께 시행되기 전 재협상을 통해 이 부분을 명확히 고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나 재협상은 미국측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낮고 우리 정부도 이미 서명이 끝난 이번 위생조건을 전면 무효화하고 다시 협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미국측의 반발도 예상된다. 실제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문제와 관련, "합의된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을 재협상하거나 합의문을 개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행정부의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하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미 의회에 제출됐을 때 논란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이외의 국가도 협상 결과에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한국과의 협상에 선뜻 나설 리 없고 한국의 대외신인도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통상 전문가는 "쇠고기 문제로 수세에 몰린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협상 결과에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쇠고기 뿐만 아니라 다른 통상 문제와 대외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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