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아들의 대학 입학 준비를 돕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화제를 모았다. 그 중에 정통 한우 고기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그녀를 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을 때도 한우고기를 즐겼다는 안젤리나 졸리. 그녀의 한우 사랑에 괜한 뿌듯함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소’라는 가축이 지니는 의미는 특별했다. ‘소’는 농사의 원천으로서 가축 중 최우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소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양한 요리로 즐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농사에 우선해서 써야만 했던 ‘소’가 너무나 귀했기 때문에 버리는 부위 없이 골고루 사용해왔던 것은 아닐까 미뤄 짐작해 본다.
소가 더 이상 농사에 쓰이지 않게 되고 고기용 소로 길러지기 시작한 지 40여 년. 한우는 수입 소고기에 비해 맛이 뛰어난 고급 고기로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에서는 한우와 수입 소고기 간 맛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밝히기 위한 연구를 실시했다. 이 연구에서 쇠고기의 맛을 결정하는 전구물질 함량을 비교한 결과, 한우고기가 수입 소고기보다 단맛과 감칠맛을 좌우하는 성분이 많고 신맛과 쓴맛을 내는 성분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맛뿐 아니라 품질과 위생 면에서도 한우고기는 강점이 많다. 우리나라 한우의 대부분은 육질과 육량이 검정된 우수성을 보증하는 씨수소의 정액을 활용해 생산한다. 사육 농가에서는 표준 사양 방법을 활용하되 환경 여건을 고려해 적절히 소에게 사료를 먹여 키우고 있다. 수입 소고기가 한우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한 판별기술로 유통과정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유통거리와 시간이 짧아 신선함을 보장한다. 이렇게 맛과 품질이 우수한 한우는 명절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최고의 선물로 꼽히고 있다.
사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소고기를 먹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명절날 고깃국으로 고기 맛을 볼 수 있었고 그마저도 식구들과 나눠먹고 아껴먹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는 고기가 참 귀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연간 1인당 소고기 소비량은 1990년 4.1kg에서 2018년 12.6kg으로 3배 이상 증가했으며, 2028년에는 15.2kg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우고기는 여전히 귀한 고기로 여겨진다. 자주 접하기에는 가격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까닭이다. 그 때문일까? 한우의 자급률은 2013년 50.1%에서 2018년 36.4%로 계속 낮아지고 있어 한우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한우의 높은 생산비로 인해 값싼 수입 소고기와의 가격 경쟁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한우산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우고기의 장점을 살리면서 가격은 안정화 하는 양면전략이 필요하다. 농촌진흥청은 한우의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소의 사육기간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소 사육 단계마다 영양소 함량과 단백질 수준을 미세하게 조절해 사육기간을 기존 31개월에서 28개월로 줄이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그동안 한우 업계 내에서는 사육 기간이 짧으면 소고기 맛이 싱거워진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과연 그럴까? 한우고기 맛의 과학적 검증을 위해 전자 혀와 맛 관련 대사물질을 분석하고 전문가의 관능 평가를 실시했다. 그 결과, 28개월 한우고기가 단맛, 감칠맛, 풍미 면에서 31개월 한우와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이 전국적으로 보급돼 활용된다면 한 해 약 936억 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생산비가 줄면 농가와 소비자의 부담이 줄어든다. 이처럼 농가와 소비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지혜로운 연구를 확대해야 한다.
최근 농촌진흥청에서 진행한 소고기 소비 실태조사에서 저지방 부위 숙성육 구입의향을 물었다. 숙성육을 구입하는 데 추가 비용 지불 의향이 있는 경우가 74.8%로 나타났다. 숙성육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는 만큼 저지방·저등급 한우고기를 고급 숙성육으로 만들어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도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한우고기를 숙성해 소비를 확대한다면 부위별 균형소비를 유도할 수 있어 한우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우 숙성육 이외에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소비자 수요에 맞춰 한우의 품질 특성을 다변화하는 연구 등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한우산업의 위기를 벗어나고자 한우 수출 확대를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한우 수출 4년차를 맞은 올해 한우고기 수출량은 65.2톤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11%씩 증가하고 있다. 최대 수출시장인 홍콩에서 한우고기는 일본 와규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품질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보다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한다고 하니 한우 농가에게 힘이 되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한우는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키워온 세계 유일의 품종이다. 우리네 경사에 항상 함께 해왔던 한우는 우리나라의 귀한 먹거리이자 민족의 자존심이다. 한우의 자존심을 지키고, 한우산업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소비자들도 적극 참여해 소비 촉진에 힘써주길 당부 드린다.
추석이 성큼 다가왔다. 요즘은 차례를 지내는 가정도 많이 줄었고 가족여행을 떠나는 등 명절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풍경은 아직도 변함없는 듯하다. 이번 추석에도 한우고기로 가족들과 함께 귀한 시간을 만들어 보길 권해본다.
/양창범 국립축산과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