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물등급제도 변경과 오해

posted Nov 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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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진 중앙대 교수

여론에 밀려 등급제 바꿀 게 아니라
마블링 낮은 고기 이용 홍보부터
축산 발전·국민건강 증진 기준 세워야


농림축산식품부는 보완된 축산물 등급판정 기준을 2019년 12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주요 개정안에는 쇠고기 등급판정 보완, 돼지고기 기계등급판정의 자동식 변경, 계란 품질등급 간소화 및 말 등급판정 추가 등이 포함됐다. 특히 관심을 모았던 쇠고기 등급판정 변화의 주요 골자는 근내지방도(마블링) 기준을 하향하는 것으로서 근육 내 지방의 함량이 낮아 기존에 1+등급을 받던 일부 쇠고기도 1++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간 일부 언론이나 소비자 단체 등에서 쇠고기의 마블링을 높이기 위해 고열량 사료를 장기간 섭취하는 것이 동물복지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지방 쇠고기 섭취에 따른 소비자의 건강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축산물등급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실제로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이 축산물등급제도 기준 변경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됐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에서 제기된 이러한 문제제기의 근간에는 축산물등급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축산물등급판정제도는 마블링이 높은 고기를 구매하도록 국가가 권장하는 제도가 분명 아니다. 축산물등급판정제도의 주요 목적은 소비자가 고기를 선택할 수 있는 명확하고 과학적인 판단 또는 구매 기준을 제시해주기 위해 만든 제도인 것이다. 

 

즉 지방함량이 많은 마블링이 높은 고기를 선호한다면 1++등급을 구매하면 되고, 담백한 고기 선호한다면 지방이 적은 2~3등급을 구매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만약에 고기 지방 때문에 건강이 걱정된다면 마블링이 낮은 등급의 고기를 구매하면 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방이 적은 고기는 등급이 낮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하다.

현재 고기식당 등에서 근육내 지방 함량이 가장 높은 1++등급 한우고기 등심의 경우 1인분에 4만~5만원선 수준으로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소비되고 있고 그 수요량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 이유는 마블링이 높은 고기를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 축산물등급판정제도가 마블링 위주로 만들어진 것은 기본적으로 마블링이 좋은 고기를 더 선호하는 식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다. 돼지고기 판매점에 가면 유달리 삼겹살과 목살만 주문하는 것도 마블링을 선호하는 탓이다. 

 

실제 쇠고기 마블링을 높이려면 농장도 굉장한 노력과 비용이 요구되므로 농장주들이 기본적으로 마블링이 좋아서 현 등급 제도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소비자가 마블링이 높은 고기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마블링이 높은 고기가 비싼 가격을 형성하게 되고, 농장에서는 비육말기에 고열량 사료 급여를 통해 마블링을 높일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실제로 고열량 사료를 비육말기에 급여하는 것이 동물복지에 반한다거나 동물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 소나 돼지와 같은 경제 동물들은 먹기 싫은 먹이를 억지로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먹일 방법도 없다. 또한 대부분 비육말기의 고열량 사료는 동물의 소화기관이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사료의 기호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즉, 고열량 사료는 가축의 섭취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다. 또한 도축이 되는 동물들은 근육 내 지방의 축적이 높지만 젊고 매우 건강한 상태의 동물들이며 마블링이 높다고 해서 동물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된다. 가축을 방목 사육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향후에 축산업이 나아가야할 방향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내의 여건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동물의 복지를 위해서는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것이 많고, 양보해야 하는 것이 많으므로 우리 사회가 동물의 복지를 위해 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즉 경제 동물의 복지는 인간의 양보와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축산물품질 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한우 육질 1등급 이상(1++, 1+, 1등급) 출현율이 역대 최고치인 73%를 기록했고, 1등급 이상 출현율은 해마다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기록들은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호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즉 축산물등급제도는 국가가 나서서 마블링이 높은 고기를 선호하도록 등급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시장의 요구에 정부가 그 기준을 맞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제품의 구매를 권장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선택한다. 

 

마블링이 높은 쇠고기의 경우 가격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이를 두고 국가가 마블링이 높은 고기를 권장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낮다. 또한 정부는 여론에 떠밀려 축산물등급제도를 바꿀 것이 아니라, 축산업의 발전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확고부동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만약 마블링에서 유래되는 쇠고기 품질의 우위를 빼면 한우고기는 수입육에 경쟁력을 잃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지방 때문에 건강이 걱정이라면 낮은 등급의 고기를 사먹으면 되고, 쇠고기 지방이 건강에 문제가 된다고 해서 마블링이 높은 고기의 등급을 낮추거나 기준을 완화하게 되면 고기의 가격도 같이 낮아져서 마블링이 높은 고기를 더 손쉽게 사먹게 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여 년 전부터 국가가 나서서 명확한 축산물의 등급기준을 마련했고,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인 축산물등급제도를 가진 국가가 됐다. 이제 소비자들은 과학적으로 평가된 식육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선택해서 구매하면 되고, 정부는 여론에 떠밀려 등급제를 계속해서 바꿀 것이 아니라 마블링이 낮은 고기의 이용을 늘리도록 하는 홍보가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 가지 더 당부하고 싶은 것은 농림축산식품부는 올 1월 8일자 보도자료에서 한우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소비여건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축산물 등급판정 세부기준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한우산업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축산업의 경쟁력과 소비자를 위한 등급판정 세부기준의 개정이라고 밝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한우산업만이 쇠고기 시장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며, 등급판정 제도 변경의 목소리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안다면, 축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치우침 없는 배려가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농어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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