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 곱창대란 1년 후, 한우 곱창 가격은 왜 폭락했나

posted Mar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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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장동의 한우 부산물 유통업체 S축산. 40여년간 마장동에서 국내산 소 곱창, 대창을 팔아 온 이모(66) 사장이 한숨을 내쉬며 냉동 창고 문을 열어젖혔다. 소 곱창과 대창, 막창, 염통이 꽁꽁 언 채 빼곡히 쌓여있었다. 6개월 전까지 구이집이나 전골·볶음 제조업체로 나가던 물건이다. “얼려둔 내장만 25t이에요. 지난해 가을쯤부터 거래가 뚝 끊겼어요.”

마장동의 또 다른 부산물 도매상 강모(64) 사장은 “가산동 냉동 창고에 900보(소 한 마리에서 나오는 전체 내장) 분량을 쌓아놨다”며 “‘곱창 대란’으로 무섭게 뛰던 가격이 지금은 열풍 이전보다 더 폭락한 상태”라고 말했다. 마장동 상인들은 “2년 전 마장동을 들끓게 했던 ‘곱창 먹방 특수(特需)’가 부메랑이 돼버렸다”고 했다. 그동안 축산 부산물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20일 오후 서울 마장동의 한 축산 부산물 유통업체 냉동창고에 소 곱창, 대창, 염통 등이 쌓여있다. /주완중 기자
◇화사 곱창 대란, 그 후­

2018년 6월 8일,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산다’는 걸그룹 ‘마마무’ 멤버 ‘화사’의 곱창 먹방을 방송했다. 화사는 곱창구이집에서 구이, 전골, 볶음밥까지 3인분을 혼자서 맛있게 해치웠고,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그날 이후, 전국 곱창집 앞엔 손님 줄이 늘어섰고, 축산 부산물 시장도 요동쳤다. 한우 곱창 수요가 폭증했지만, 공급량이 부족했다. ‘부산물(副産物)’은 말 그대로 정육(주산물) 도축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생산되는 부위’다. 곱창이 부족하다고 해서 곱창을 얻기 위해 소를 더 도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부산물 공급량은 정육 수요가 늘어나는 설·추석 시점에 덩달아 늘어나고, 6월 같은 고기 비수기에는 줄어든다.

곱창 수요가 급증하자 외식 시장에서 ‘곱창 대란(大亂)’이란 말이 나올 만큼 곱창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경기 일산에서 곱창 구이집을 운영하는 조모씨는 “2018년 6월에 2주 동안 곱창을 구할 길이 없어 영업을 못했고, 이후에도 9월까지 매달 열흘씩 문을 닫아야 했다”며, “1인분(200g)에 1만4900원 하던 한우 곱창구이를 그해 가을엔 2만원으로 올렸다”고 했다.

2018년 여름 식당가에는 한우 곱창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인터넷 캡처
◇외국산에 밀려난 한우 곱창­

곱창 열풍은 1년 넘도록 지속됐고, 한우 내장 값도 계속 치솟았다. 국내 최대 한우 공판장인 농협 음성 축산물공판장의 한우 내장 도매가는 2018년 6월 보당 15만9050원에서 지난해 6월 31만5210원으로 배 가까이(98.2%) 뛰었다. 그러다 지난해 추석 이후 폭락을 거듭하며, 올해 초 8만1850원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열풍 이전 가격의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외국산 곱창이 시장을 파고든 게 가장 큰 이유다. 한우 내장 수급이 불안해지고 가격이 폭등하자 저가형 곱창구이집과 프랜차이즈, 가정간편식(HMR) 제조 공장 상당수가 2018년 말부터 외국산으로 재료를 변경하기 시작했다. 주로 ‘탕거리’ 용도로 쓰였던 호주·미국·뉴질랜드·멕시코 곱창은 빠른 속도로 구이 시장까지 장악했다. 국내산과 호주산 곱창을 4대6 비율로 섞어 쓰던 한 유명 곱창집은 지난해 1대9로 비율을 조정했다.

2018년 6월 걸그룹 마마무의 멤버 화사가 한 방송에 나와 '곱창 먹방'을 한 후 곱창은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최근엔 외국산 곱창에 밀려 한우 곱창은 가격이 폭락하고 재고가 쌓이고 있다. 사진은 마켓컬리가 판매하는 호주산 곱창. /마켓컬리
한 곱창 프랜차이즈의 영업 팀장은 “지난해 말 기준 호주 곱창 가격도 2018년 6월에 비해 70%나 올랐지만, 그래도 당시 한우 곱창 가격에 비하면 5분의 1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자영업 경기가 점점 더 나빠지면서 곱창 판매 가격을 올릴 수는 없으니 한우 곱창 대신 호주, 아르헨티나, 멕시코 곱창 등으로 수입 거래선도 다변화됐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소 곱창·대창 수입량은 5년 전 3000t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만3801t으로 4.6배 늘었다.

증가하는 소 내장 수입량
◇생산자·상인 단체 “곱창 유통 구조 개선 시급”­

거래처가 떨어져 나가자 한우 부산물을 냉동 창고에 넣어놓고 발을 구르는 도매상이 늘었다. 올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까지 겹치면서 부산물 업계는 망연자실하고 있다. 전국한우협회(생산자)와 한국축산부산물업중앙회(상인)는 일제히 국내 부산물 유통의 불투명한 거래 구조를 개선해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경기 부천의 한 냉동창고에 보관 중인 한우 곱창(위). 20일 만난 서울 마장동 부산물 상인들은 "호주산, 미국산 곱창에 시장을 잠식당했다"고 하소연했다.(아래)/부산물 도매상 강모씨 제공·주완중 기자
한국축산부산물업중앙회 양승용 회장은 “소 내장 부위는 신선도·위생 문제 때문에 생산 즉시 유통돼야 하고, 매달 공급 물량이 요동친다는 특수성이 있다”며 “수급 불일치가 반복되고, 입찰 시간이 지체되는 위험을 피하려고 도축·공판장에서 일부 상인과 장기 수의 계약 형태로 유통하면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막심하다”고 말했다. 유통 중간 단계에서 특정 단체가 ‘피 값’이라고 부르는 통행세를 요구하거나 내장 세척비 등 유통 비용을 부풀려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앞서 한우 부산물의 품질 기준 도입, 투명한 가격 공개 시스템, 대량 공급을 위한 가공 시설 등 관련 산업 투자 확대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통 혁신 없이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외국산 곱창에 시장을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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