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로 확인된 '금식판, 흙식판'] 납품업체 거래명세 분석... 수입소 납품 96%가 민간어린이집
국공립 어린이집은 유아들에게 주로 한우를 먹이는 반면, 상당수 민간 어린이집은 3분의 1 가격인 수입소를 먹이고 있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는 <오마이뉴스>가 어린이집에 식재료를 납품하고 있는 한 중견급식업체의 거래명세서를 샘플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오가던 '금식판, 흙식판' 설왕설래가 문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똑같은 식단표를 사용하고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같은 급간식비 지원비를 받고 있음에도 국공립과 민간에 따라 급식 재료가 차별적이라는 강력한 정황이 나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영유아보다 큰 초등학생의 경우 공사립을 막론하고 학교급식에서 모두 한우만 사용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초등학교에서 수입소 급식이 일제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중견급식업체 A사 소고기 거래명세서 분석
[6월 1일 서울 자치구] 같은 '소고기 브로콜리볶음'인데 국공립은 한우, 민간은 수입육
[5월 29일 경기도 자치시] 같은 '소불고기' 메뉴인데 마찬가지... 수입육이 단가 약 3분의 1
▲ A사가 지난 6월 1일 서울 OO구에 있는 국공립 B 어린이집에 식재료를 납품한 사실을 보여주는 거래명세서. | |
ⓒ 윤근혁 |
▲ A사가 지난 6월 1일 서울 OO구에 있는 민간 C 어린이집에 식재료를 납품한 사실을 보여주는 거래명세서. | |
ⓒ 윤근혁 |
▲ A사가 지난 6월 1일 서울 OO구에 있는 민간 D 어린이집에 식재료를 납품한 사실을 보여주는 거래명세서. | |
ⓒ 윤근혁 |
< 오마이뉴스>는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아래 참교육학부모회)와 함께 중견급식업체인 A사의 어린이집 소고기 거래명세서를 입수했다. A사는 현재도 서울과 경기지역 140여 개 어린이집에 급식재료를 납품하고 있다.
이 지역 어린이 급식관리지원센터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국공립이든 민간이든 어린이집들은 우리가 만든 식단표를 거의 모두 그대로 활용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집이 급식비를 2800~3000원 정도로 잡았다고 보고, 이에 맞춰 식단표를 짰다"고 말했다.
그런데 거래명세서를 살펴봤더니 업체는 국공립 B어린이집에는 kg당 단가 4만8510원인 1등급 한우를 납품했다. 반면 민간 C, D어린이집에는 단가 1만6160원인 수입 소고기를 납품했다.
경기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5월 29일 이 업체는 경기도의 한 자치시에 있는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 단가 4만9465원인 한우를 납품했다. 하지만 같은 날 같은 지역의 한 민간 어린이집에는 단가 1만5958원의 소고기를 납품했다. 해당 시의 어린이 급식관리지원센터가 만든 이날 식단표는 '소불고기'였다.
6월 한 달 수입육 납품 96%가 민간 어린이집
ⓒ 오마이뉴스 박종현 |
단지 이 두 지역에 있는 일부 민간 어린이집만의 상황이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올해 6월 A사의 어린이집 소고기 납품 건 모두를 분석했다. 한 달 간 88개 어린이집에 총 364건 납품했는데, 이를 어린이집 유형(국공립-민간)과 소고기 종류별(친환경 한우-수입소)로 분류했다. 분석 결과, '국공립은 한우-민간은 소입소'라는 뚜렷한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위 표 참고).
A사가 6월 한 달 동안 수입 소(호주산)를 납품한 어린이집은 모두 21곳이었다. 이 가운데 민간(가정형 등 포함) 어린이집이 19곳(90.5%)으로 압도적이었다. 민간과 국공립 어린이집의 중간형인 공공형(서울형 포함) 어린이집 1곳을 빼도 18곳(85.7%)이 순수 민간 어린이집이었다. 수입 소를 납품받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2곳(9.5%)이었다.
납품 횟수를 기준으로 보면, 전체 94건 가운데 민간이 90건(공공형 6회 포함)으로 무려 95.7%를 차지했다. 국공립은 4건(4.3%)에 그쳤다.
반면 A사가 6월 한 달 친환경 한우를 납품한 어린이집은 모두 71곳이었다. 이 가운데 민간 어린이집은 22곳(31.0%)이었다. 공공형 어린이집 8곳을 빼면 그 수치는 더 낮아져 14곳(19.7%)에 그쳤다. 한우를 납품받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의 69.0%인 49곳이었다.
납품 횟수를 기준으로 살펴봐도 전체 270건 가운데 민간이 79건(공공형 25회 포함)으로 29.3%였다. 그나마 순수 민간 어린이집만 따져보면 20%(54회)로 줄어든다. 한우를 납품받은 국공립은 191건으로 70.7%를 차지했다.
한우와 수입 소를 함께 납품받은 어린이집은 4곳이었는데, 모두 민간(공공형 1곳 포함)이었다.
급식업체 대표 "수십 년 적폐... 아이들 먹는 문제만큼은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보"
급식업체 A사의 대표는 "다 똑같은 우리나라 영유아인데 유독 민간 어린이집에서 항생제 검증이 안 된 수입소를 많이 먹여온 것은 수십 년 된 적폐"라며 "어린이 건강을 위협하는 이런 적폐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공립과 민간 어린이집의 급식 차별은 다른 육류와 계란, 우유, 쌀 등도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아이들 먹는 문제만큼은 공정하게 관리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번에 제보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어린이집 정부 지원 급간식비를 0~2세 영아는 하루에 1900원, 3~5세는 2559원씩 지원하고 있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경기도 한 자치시의 보육지원과 관계자는 "우리 지역은 정부 지원금에 지자체 지원금까지 합쳐 하루에 급간식비로 영아는 2470원, 유아는 3070원 이상을 배정토록 하고 있다"면서 "국공립이나 민간 어린이집 모두 급간식비로 이 액수를 초과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 지역 한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은 "우리는 아이들 급식을 잘 먹이기 위해 친환경 좋은 소고기만 사용한다"면서 "일부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는 사업장이기도 하니까 굳이 단가가 높은 한우를 먹이는 것보다 원활하게 운영하는 게 우선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민간 어린이집 원장은 "우리 지역은 민간 어린이집도 도농상생 공동구입으로 한우를 사서 국거리로 쓰는 경우도 있고, 우리 어린이집은 불고기의 경우 양이 많이 필요해 호주산을 쓰고 있다"면서 "운영비가 부족한 민간 어린이집은 국공립에 비해 여러모로 어려움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시대에 급식비를 부정하게 쓰는 일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7월 22일 민주노총 제주본부 제주평등보육노조 소속 보육교사들은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물에 밥 말아 주기, 아침에 죽 점심에도 죽 먹이기, 거짓 원산지 표시 등이 일부 어린이집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들 보육교사 상당수는 민간 어린이집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교육학부모회 "이번 기회에 철저히 실태 파악해야"
▲ 지난 7월 22일 민주노총 제주본부 제주평등보육노조 소속 보육교사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
ⓒ 제주평등보육노조 |
|
나명주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민간 어린이집은 상대적으로 돌봄 시간이 길어 아이 돌봄이 가정 내에서 원활하지 않는 맞벌이가정이나 저소득층에서 많이 이용하고 있다"면서 "이런 사실만으로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심정인데, 아이가 급식 차별까지 받고 있다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영유아 영양불균형은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건강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서 "보건복지부는 이번 기회에 철저히 실태를 파악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복지부의 보육통계에 따르면, 2019년 12월 현재 전국 3만 7371개의 어린이집 가운데 국공립은 전체의 11.6%인 4324개다. 민간은 1만2568개로 33.6%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가정, 법인, 직장 어린이집이다. 영유아 수로 따져 봐도 국공립은 23만 2132명인 반면, 민간은 66만 4106명에 이른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윤근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