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보고서에 따르면
적갈색·흑갈색·호랑이무늬
전국에 다양한 재래소 존재
1938년 '조선우 심사표준'
赤毛에 높은 점수 매기면서
누렁이외 다른 소들은 도태
농진청 등 재래소 부활 노력
정지용이 노래한 '얼룩백이'
소비자들에 다시 돌려줬으면
1912년 일제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에서 조사한 경상 및 전라도 지역의 소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소 2744마리의 모색(毛色)을 분류해 놓은 것인데, 지금의 누렁이 한우로 보이는 적갈색 털을 갖고 있는 소의 숫자가 2135마리(77.8%)로 나타났다. 그리고 흑갈색 소가 284마리(10.3%), 흑색 소가 241마리(8.8%), 호랑이무늬 소(虎毛)가 71마리(2.6%), 기타 13마리(0.5%)로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에 누렁이 한우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 자료에서 등장하는 흑갈색 소는 몸은 대체로 검은데 등선을 따라 갈색 털이 보이는 요즘 '내륙형 흑우'라고 불리는 재래소와 유사해 보이고, 온몸이 검은 흑색 소는 '제주형 흑우', 호랑이무늬 소는 '칡소'로 보인다. 자료에는 흑갈색 소와 호랑이무늬 소가 체격이 우수한 것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1914년 동 기관 대구지장(大邱支場) 자료에는 경상도 지역에서 소를 고르는 기준을 정리했는데 다양한 모색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당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소는 상반신이 갈색, 하반신이 흑색인 소라고 나와 있는데 이 소가 명확히 어떤 소인지 지금은 알 길이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신문을 보면, 1927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에 충북 음성에서 흑우 절도범을 체포했다는 기사가 있고, 동보 1935년 8월 1일자에는 충남 예산에서 열린 전국씨름대회에서 청년부 1등에겐 큰 황소를, 2등에겐 흑우를 수여했다는 기사가 났다.
당시 여러 자료를 보면 우리 재래소는 황색이 제일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모색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 또한 명확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기사는 1982년 동아일보에 게재된 이창화 씨(당시 71세)와의 인터뷰인데, 1916년 여름 일본 순경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며 '칙쇼(제길)'라고 일본어로 욕을 했는데 머슴이 이를 '칡소'로 알아듣고 '집에 칡소는 없고 누렁소만 있다'고 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칡소라는 단어를 누렁이와 구분해서 사용했다는 근거다. 또한 1959년 동아일보 신춘작품 동화 부문에서 가작을 수상한 '길이네 소'에서 노고수 작가는 길이의 소를 얼룩진 칡소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양한 재래소들이 어쩌다 멸종 단계에 이르러 누렁이 한우만이 남게 됐는지까닭이 궁금하지 않은가.
1938년에 발표·시행한 '조선우(朝鮮牛) 심사표준'의 평가 기준을 보면 현재 한우 모색에 해당하는 적모(赤毛)에 높은 점수를 주도록 돼 있다. 이 문건은 광복 후 1964년 농림부가 고시한 '종축 및 후보종축 심사기준'과 1970년 한국종축개량협회가 한우 등록을 위해 정한 '한우심사표준'의 바탕이 된다. 그렇게 누렁이를 제외한 다른 재래소는 이 땅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돼 갔다.
1990년대 이후 농촌진흥청은 이 땅에 얼마 남지 않은 칡소와 흑우를 찾아내 현대적 육종 방법으로 복원했다. 많은 노력을 했으나 칡소는 4000여 마리까지 늘다가 다시 3000여 마리로 줄었다. 흑우는 1700여 마리밖에 안 된다. 누렁이 한우는 마블링 중심의 등급제에 맞춰 개량을 했기 때문에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고 덩치도 큰 반면, 칡소와 흑우는 개량을 하지 않아 덩치가 작고 마블링도 한우만큼 발달하지 않는다. 즉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생산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가축의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상품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칡소와 흑우에 대해 모르고 있고, 또 시장 접근성 역시 낮다. 구이용 부위는 매력적인 외식·정육 상품으로, 비선호 부위와 부산물은 다양한 간편식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판매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려면 우선 기존 한우와의 특성 차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제대로 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재래소의 부활을 위해 농촌진흥청과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벽제갈비가 함께 힘을 합친다. 정지용 선생이 노래하던 '얼룩백이 황소'를 대한민국 소비자에게 다시 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겸 푸드비즈니스랩 소장]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1/04/317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