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식부터 오마카세까지 '한우 FLEX'...청담 일대 맛집, 여름까지 예약 완료

posted Apr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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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의 성지’라고 불리는 서울 마장동 한우촌. 마장역 방면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노후된 주변 골목과 동떨어진 고급스러운 외관의 5층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국내 한우 오마카세(오마카세는 ‘맡기다’라는 뜻의 일본어, 셰프가 알아서 음식을 만들어주는 곳을 가리킨다) ‘끝판왕’이라 불리는 ‘본앤브레드 신관’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지나 육중한 문을 열어젖히면 본앤브레드에서 가장 비싼 한우 오마카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픽이지바(speak-easy bar)’가 나타난다. ‘비밀의 공간’인냥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조용한 공간에는 7~8명이 앉을 수 있는 부채꼴 모양의 다이닝 바가 마련돼 있다. 바 중앙에 선 한우 전문 셰프의 인사말로 한우 맡김차림 코스가 시작된다.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한우 파티’다. 최고급 안심 ‘샤또브리앙’부터 ‘채끝살’ ‘꼬리살 육회’ ‘부챗살’ ‘새우살’ 등등…. 전문가 손길로 딱 알맞게 익힌 소고기가 한두 조각씩 접시 위에 놓일 때마다 식객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고기 외에도 빵과 빵 사이에 안심을 끼워 만든 ‘가츠산도’, 구운 한우패티가 한가득 들어간 ‘미트파이’, 진한 한우 육수로 맛을 낸 ‘쌀국수’까지 각양각색 한우 요리가 줄줄이 이어진다. ‘인터미션’도 있다. 중간에 정성원 본앤브레드 대표가 등장해 ‘소화제’를 갖다 주며 “부족하면 더 드릴 테니 양껏 먹으라”는 말을 곁들인다. 정 대표는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지만 그 이상의 경험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감사하게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예약 고객이 끊이질 않는다. 프라이빗한 공간을 찾는 수요와 럭셔리한 한우 요리에 대한 높은 관심이 시너지를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와규(일본산 소고기)와 고베는 잊어라.”

최근 미국 종합 일간지 USA투데이에 실린 칼럼의 부제다. 한우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 소 품종 중 하나라고 소개한 이 글은 한우가 미국·호주산은 물론, 와규보다도 맛이 뛰어나다며 치켜세웠다. 그럼에도 와규보다 유명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구제역 사태로 2014년까지 수출이 막혔고, 이후에는 한국인들의 높은 수요로 수출 물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억눌린 소비 심리가 되살아나며 최고급 식품 중 하나인 한우가 국내외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외식이나 여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왕이면 좋은 음식을 즐기자는 ‘보상 소비’가 원동력이 됐다. 1인분에 30만원 넘는 고급 한우 맡김차림 식당도 연일 매진 사태다. 덕분에 지난해 한우 가격은 평년보다 늘어난 사육 두수에도 고공행진을 했다. 그간 대중 고깃집에서 단체로 소비하던 데서 나아가 가정식과 프라이빗 식당에서도, 또 마블링이 적지만 숙성한 ‘저가 한우’를 찾는 등 소비 채널과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어 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워커힐호텔앤리조트 한우 다이닝 ‘명월관’은 전국 특급호텔 중 처음으로 한우 오마카세 코스를 선보였다. <워커힐호텔앤리조트 제공>​

▶한우 생산량·가격 쌍끌이 상승

▷1㎏당 평균 1만9891원…역대 최고가

한국인의 한우 사랑은 통계로 확인된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한우 정육 생산량은 2017~2018년 약 205000t에서 2019년 214800t, 지난해 215600t으로 꾸준히 늘었다. 한우는 보통 생후 28~32개월이 되면 도축돼서 시장에 출하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가 늘어난다고 갑자기 생산을 확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미 고급화된 소비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국한우협회 한우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한우 소비량은 2016년 3.9㎏에서 지난해 4.2㎏으로 증가했다.

생산량이 늘면 가격이 하락할 수 있지만 한우값은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해 1㎏당 평균 가격이 1만9891원을 기록, 전년(1만7965원) 대비 10.7% 상승하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한우 도체 육질 등급별 경락 가격, 축산물품질평가원 자료). 재난지원금 지급과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억눌린 소비 심리가 가정식 소비와 보상 소비로 표출되며 한우 수요와 가격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은 “모임과 만남을 할 수 없는 요즘, ‘한 번 만날 때 좋은 것을 먹자’는 보상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이동 자제를 권고하면서 국내 농축수산물로 명절 선물보내기 운동을 전개한 점도 소비 진작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한우 맡김차림 전문점 ‘본앤브레드’는 프라이빗한 공간과 뛰어난 품질로 사랑받는다. 2019년에는 파라다이스시티에 입점하며 외연을 확장했다. <파라다이스시티 제공>

▶고깃집서 가정식·코스요리 ‘양극화’

▷청담 일대 맛집, 여름까지 예약 완료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우를 먹는 공간이나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그간 한우를 소비하는 공간은 주로 오피스 상권의 대중 고깃집이나 정육식당이었다. 최근에는 가정에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또는 10명 이하 소그룹 손님만 받는 프라이빗한 고급 고깃집에서의 소비가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제 가정용 소비가 주를 이루는 이마트에서는 지난해 한우 등심, 채끝 부위 매출액이 전년 대비 각각 7.2%, 11.8% 증가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한우를 집에서 즐기는 소비자가 늘어남에 따라, 외식 메뉴로 선호되는 ‘구이용’ 부위 매출이 호조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이마트는 지난해 7월 기존 등심, 채끝만 운영하던 ‘??에이징(wet aging) 구이용 부위’를 부챗살, 치마살, 업진살 등 총 8개 부위로 확대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대형마트가 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 배제됐음에도 구이용 한우 매출이 증가한 것은 고무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가정 내에서 소비하는 한우 프리미엄 부위 수요가 높아질 것을 감안, 올 1월에는 ‘한우 갈빗살 구이’ ‘한우 생갈비 구이’ 상품도 새로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프라이빗 고깃집은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이 대세다.

맛집 추천 플랫폼 ‘식신’에 따르면 지난 3월 ‘한우 오마카세’ 키워드 검색량은 1556건으로 전년 동기(954건) 대비 61.3%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한우(1617건→1777건)’ ‘소고기(2739건→3063건)’ 검색량 변화보다 훨씬 두드러진 증가세다. 상황이 이렇자 전문점들은 코로나19 사태에도 예약 없이는 자리 잡기도 어려울 만큼 문전성시를 이룬다. 유명 음식점 중에서는 7~8월까지 예약이 밀려 있는 곳이 적잖다.

식당 예약 플랫폼에서도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 인기가 수치로 증명된다. 고급 식당 전문 예약 플랫폼 ‘테이블매니저’가 지난 1~3월 고객사 1400여곳의 전체 예약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한우 오마카세 예약률은 여타 식당 대비 3.3배나 더 높았다. 테이블매니저 관계자는 “예약 플랫폼 특성상 파인다이닝 식당, 또 테이블 수가 적은 고급 식당을 고객사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우 오마카세 평균 예약률이 훨씬 높다는 것은 단순히 비싼 음식을 찾거나 프라이빗한 공간을 찾는 수요 때문이 아니라, 한우 오마카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유명 전문점이 강남·청담동 일대에 즐비하다. 1인당 30만원을 훌쩍 넘는 등 높은 가격대 때문에 평균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 포진한 모습이다. 서울 왕십리 ‘본앤브레드’와 함께 서울 한우 맡김차림 쌍두마차로 불리는 삼성동 ‘모퉁이우 RIPE’, 고급스러운 플레이팅으로 유명한 신사동 ‘설로인’, 이 밖에 청담동 ‘꿰뚫’ ‘비플리끄’, 한남동 ‘소수’ 등이 유명하다.

가격대로 차별화한 ‘가성비 전문점’도 빠르게 늘어나는 모습이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모퉁이우 사랑방’이 대표적이다. 모퉁이우가 ‘RIPE’ ‘WX’에 이어 선보인 세 번째 매장으로 상대적으로 부담 없는 가격(15만원)으로 수준급 한우 코스를 맛볼 수 있다. 올해 3월 선보인 한남동 ‘이속우화’는 벌써부터 두 달 예약 대기가 꽉 찼다. ‘5만원대 디너’라는 가성비를 앞세워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서울 서교동 ‘우마담’은 가성비 맛집으로 꼽힌다. 청어알, 으깬 두부, 오이 슬라이스와 함께 김에 싸서 즐기는 ‘부챗살’이 유명하다. 프리미엄 오마카세 가격이 12만원이다.

안병익 식신 대표는 “한우는 물론 그냥 먹어도 맛있다. 하지만 전문 셰프들의 개성과 철학이 담긴 한우 맡김차림 요리를 통해 한우를 보다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다. 한우 숙성 정도부터 미세한 불 조절을 통한 굽기 정도, 곁들이는 소스나 플레이팅 등 셰프들의 섬세한 손길을 통해 한우가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도 한우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종합외식기업 bhc는 프리미엄 한우 전문점 ‘창고43’ 브랜드 전국화에 나섰다. 지난 1월 17번째 직영매장인 ‘광주상무점’을 열고 수도권 위주 출점 방식에서 벗어나 전라남도에 첫 거점을 마련했다. 약 300평, 292석 규모인 대형 매장으로 비즈니스 미팅, 가족·지인 모임 등 여러 용도로 활용되도록 했으며, 최대 60명 수용 가능한 방도 갖췄다. 코로나19 사태에 늘어난 최근 가정식 수요를 겨냥해 왕갈비탕, 소머리곰탕 등의 HMR 신메뉴도 선보였다.

▶한우 시장 지속 성장하려면

▷저등급 한우의 상품성 개선 ‘과제’

한우 인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업계에서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한우 소비 트렌드가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꽃등심’으로 대표되는 고가의 특수부위 전문점,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을 넘어 ‘저가 한우’ 등 한우를 소비하는 채널과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마장동에서는 1층 축산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입한 한우를 2층 식당에서 상차림비만 내고 즐기는 ‘축산시장 정육식당’이 인기를 끌며 빠르게 늘고 있다. 마장동에서 정육식당을 5년째 운영 중인 축산업 20년 경력의 김민우 씨(가명)는 “최근 한우 소비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마블링이 많은 고가 특수부위만 고집하는 손님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오히려 지방이 적은 부위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드라이에이징’ ‘워터에이징’ 방식으로 숙성한 ‘저가 한우’를 찾는 이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단, 한우가 워낙 고가인 탓에 소비층이 한정돼 있다는 점은 시장 성장의 저해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한우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해 2~3등급 판정을 받은 저지방 한우의 상품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지형 한양여대 외식산업과 교수는 “우리나라 소고기값이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각 나라의 자국산 소고기 평균 가격은 5만2000원(1㎏, 소비자 가격 기준)인데 한우는 이보다 2.8배 비싼 145000원에 팔린다. 높은 등급을 고집하는 식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저등급 한우를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4호 (2021.04.14~2021.04.20일자) 기사입니다]

 

https://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21&no=36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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