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만이 정의인가?

posted Jun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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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등 윤리적 이유로 채식한다고
무조건적인 육식 비판은 옳지 않아
육식·채식 모두 자연의 희생으로 얻어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채식은 건강식이고 윤리적인데 반해 축산물의 섭취는 서양식이고 동물학대와 동일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채식은 개인의 선택으로 결코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동물권·환경보호 등의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만큼 차별적 시선을 가지는 것 또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존중함이 마땅하다. 또한 과도한 육식은 건강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지구의 자원을 과도하게 소비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채식을 하며, 육식을 무조건 적으로 비판하는 점이 옳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나는 농부의 아들이자, 농업을 부업으로 하는 농부이기도 하다. 농업을 생업으로 해본 적이 없는 많은 이들은 흙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자연을 보호하고 동물을 생산하는 것 보다 대단히 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잘못된 생각이다. 취미로 텃밭을 일구는 것과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쌀과 채소,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연을 파괴하고 생물을 해쳐야 하는지 일반인들은 잘 모를 것이다. 자연을 논과 밭으로 바꾼 이후 토착생물을 내쫓고, 물을 가두고, 여름 내내 유해 조수와 해충, 잡초와 싸워야 하며, 이 과정에서 비료와 농약을 피하기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육식을 회피하고 채식을 하면 지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작물도 자연을 파괴하면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저 산과 들에 나는 풀과 목초를 조금 가져다 먹는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논과 밭 또는 과수원에서 그 작물들이 어떻게 대량으로 재배되는지 지켜본다면 과연 식물을 재배하는 것이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자연 그 자체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이다.

축산업 부지 마련을 위해 산림의 파괴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벼 재배 면적이 전체 농업 면적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벼는 주위 논과 물을 공유해야만 한다. 뒷논이 물꼬를 터줘야 내 논에 물이 들어오고, 내가 물꼬를 터줘야 앞 논에 물이 들어간다. 농약을 살포하거나 농업용수에 오염이 있다면 서로 공유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e-나라지표에서 제시한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ha당 국내 농약 사용량은 10.2㎏이며, 화학비료 사용량은 ha당 268㎏이다. 이렇듯 벼, 채소 또는 과일 등을 생산하는 것이 축산물을 생산하는 것에 비해 더 윤리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작물을 재배하는 것 또한 지구 자원을 파괴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동물복지를 위해 넒은 목초지에 방목하는 것과 유기농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비료나 농약의 사용을 줄이는 것 또한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동물과 지구를 위해 비싼 값을 지불하고 동물을 위해 나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성인의 일일 필요 섭취 열량은 평균 2000~2500㎉ 정도다. 하루 필요한 열량을 200g 공기밥 한 그릇(300㎉)으로 계산하면 총 일곱 그릇을 섭취해야 하고, 당근으로만 계산하면 5.5㎏, 배추는 8㎏을 섭취해야 한다. 에너지 집적도가 낮은 채소 등으로 기본 열량을 충족하려면 혼합된 식품 상태라 할지라도 상당히 많은 양의 곡류와 채소류를 혼합 섭취해야 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곡류와 채소로만 식사를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재배 면적이 필요하고 대량 생산 시스템이 필요하다.

동물권 측면에서 축산물의 과도한 섭취를 줄이는 것은 분명 옳은 주장이다. 현재 인류가 고기를 너무 과하게 먹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동물들이 인간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만든, 논밭과 과수원 또한 동물의 서식지를 빼앗은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알아야만 한다. 특히 과실류는 야생 조류와 싸워야 하고 논과 밭작물은 멧돼지, 고라니의 영역을 뺏은 것일 수 있다.

그동안 야생동물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고, 가축들이 마냥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야생동물은 배고픔·목마름·추위·더위·질병·천적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이동의 자유가 있는 반면, 가축은 이동의 자유가 없는 대신 배고픔·목마름·추위·더위 등의 스트레스가 훨씬 적다. 가축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축산업을 비호할 생각은 없다. 현재 우리는 자연이 허락한 것 이상의 축산물을 소비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채식만이 자연을 보호하는 것 또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동물이 고통 받는 것을 줄이기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것을 존중한다. 다만, 채식을 위해 생산되는 벼, 채소나 과일 또한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야생동물과 곤충,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아주길 희망한다.

세계 보건기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인 1명당 과일·채소 일일 섭취량은 평균 540g이다. 이는 WHO 권장량 보다 두 배 이상 많고, 세계 평균 384g 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다. 정말로 동물을 위하고 지구 환경을 위한다면 현재 섭취하는 전체 식사량을 조금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육식과 채식 모두 그 소재는 자연의 희생으로 얻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므로 ‘채식은 옳고 육식은 그르다’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지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육식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죄도 아니듯 채식이 육식을 대신하는 당연한 정의도 아닐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http://ww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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