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반란? 마블링의 음모?

by 필로 posted Feb 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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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재 필로가 집필 중인 책자의 일부분입니다.>

 

채식이 대안이다!”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공장식 축산에 희생되는 불쌍한 소들의 처절한 현실~”

볏짚을 제외한 모든 사료를 수입해서 축산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몸에 안 좋은 지방덩어리 고기를 비싼 돈 주고 사 먹고 있는 이상한 대한민국

“GMO 옥수수 사료를 100% 수입해 먹이고, 성장촉진제와 항생제와 방부제 등으로 범벅이 된 고기덩어리를 과연 먹어야 하나!!!”

마블링이 많다는 것은 결국 건강하지 못한 소라는 말! 이런 소고기를 비싼 가격에 사먹어야 하는 현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등급제란 말인가?”

 

지난 연말, MBC에서 특별히 기획하여 제작한 육식의 반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일반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필로도 마블링의 음모라는 부제를 달고 방송된 이 특집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충격이 너무 컸던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방송을 보면서 순간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당황스러웠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 쥘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만약 이 방송이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고 공분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특별히 제작된 것이라면, MBC가 제작한 이 특별다큐멘터리는 120%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겨진다. 필로조차 그토록 흥분하게 만들고 화가 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필로가 화가 난 이유는 일반 시청자들의 반응과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 방송이라는 것이 제작자가 기획한 생각이나 의도를 시청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자극적으로 제작하여 시청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켜도 되는지 의문이 들어 화가 난 것이었다. 특히,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예단하고, 군데군데 공분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자극적인 단어를 선택하여 사용한 것은 두고두고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 마지막 멘트가 마블링은 지구촌의 막대한 곡물을 먹어치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한다. 마블링이 잔뜩 낀 고기를 먹은 부자들도 더 이상 행복하지만은 않다. 지구촌은 과연 이 소름끼치는 음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 당신의 선택에 우리 모두의 미래가 달려 있다.”로 끝나는 이 프로그램은 원래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각종 상을 수상했다. 전주MBC의 유 룡 기자가 연출한 이 특집다큐멘터리는 201212월 방송기자협회의 방송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을 수여하였다. 아마도 방송기자협회나 한국기자협회는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내용이 모두 사실이나 진실이라고 믿은 것 같다.


하지만 식육학자인 필로가 보기에 이 프로그램은 전문적 지식이 결여된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으며
, 좀 심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시청자인 국민들을 자극시킬 수 있을까만을 고민한 대단한 작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타이틀부터 문제다. 마블링의 음모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국어사전을 보면 음모는 일을 비밀히 꾸밈, 또 그 계략또는 범죄에 관한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니까 국어사전의 의미대로라면 현재 마블링(근내지방)이 많은 소를 생산하여 맛있는 소고기를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려는 일체의 행위들이 비밀히 꾸며진 계략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곧 범죄에 관한 행위라는 뜻이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국내외적으로 지난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소고기의 마블링을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은 비밀히 꾸며진 계략에 의한 것이 아니고
, 공공연하게 경쟁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또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관한 연구의 결과는 지금도 수많은 논문으로 발표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특허기술은 한 나라의 축산발전을 책임지는 핵심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송은 이러한 전 세계적인 연구추세를 철저히 무시하고, 이를 단순히 미국 곡물(옥수수)업계의 음모에 의한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 축산업계나 학계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 그러한 음모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호도(糊塗)한다. 필로는 이것이야말로 대단히 심각한 음모라고 생각한다.

 


 

육식의 반란, 마블링의 음모는 처음부터 진실을 왜곡하면서 시작한다. 1인당 연간 70kg의 소고기를 먹는 나라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건강을 지키는 이유는 무려 4시간씩이나 장작불에 구워 기름을 빼내는 전통을 고집하기 때문이고, 세계 제1의 소고기 수출국인 호주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고기는 다름 아닌 소고기 엉덩이살이라고 소개한다. 고기를 많이 먹는 호주 사람들은 한국에서는 육회로만 먹는 기름 한 점 없는 질긴 고기를 스테이크로 구워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고기를 많이 먹는 아르헨티나와 호주의 경우 기름기(마블링)를 빼어 먹거나, 기름기가 없는 고기를 즐겨 먹기 때문에 건강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르헨티나와 호주에서는 광활한 대지에서 생산되는 목초로 소를 방목하면서 사육하기 때문에 값싸고 맛없는 소고기가 대량 생산된다
. 따라서 그들이 소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잘 숙성시켜 바비큐를 하거나 양념을 한 스테이크로 먹는 방법 이외의 선택이 별로 없다. 더구나 이들 나라에서 아직도 변함없이 최고의 소고기로 꼽는 부위는 그나마 마블링 형성이 잘 되는 등심부위이고, 그래서 등심부위의 가격이 가장 높다. 그들도 마블링이 많은 고기를 선호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블링이 없는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보다 건강한 것도 아니다.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를 선호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수명이 이 두 나라 국민들의 평균수명보다 길고, 사망원인과 질병의 발생율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 그들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은 각종 통계자료가 잘 보여주고 있다.1)


이처럼 이 방송은 시작부터 진실을 왜곡하면서 나름의 제작기획의도를 살벌한 언어로 설명한다
. “한국은 어떤가? 살코기 사이로 기름이 허옇게 퍼져 있는 꽃등심, 1+, 1++라 불리는 마블링 많은 고기를 최고의 고기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먹고 있는 것일까? 마블링은 진정 2, 3배 돈을 지불할 만큼 값어치 있는 것일까? 경제순리에도 맞지 않고 국민건강에도 독이 되는 마블링, 그 마블링의 음모를 파헤쳐 본다.” 이는 정말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멘트 아닌가? 고기의 맛을 좌우하는 근내지방이 밝은 선홍색의 근육 사이에 하얗게 눈꽃처럼 박혀있는 것을 마블링이라고 하는데, 이 멘트에서는 살코기 사이로 기름이 허옇게 퍼져있고 국민건강에 독이 된다고 표현한다. 음모도 이런 음모가 없다.


여기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마블링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 마블링(marbling)은 근내지방(intramuscular fat)으로 하나의 근육 안에 있는 지방을 말한다. , 근육을 이루고 있는 근속들 사이에 침착하는 지방과 근속을 이루는 근섬유들 사이에 축적되는 지방을 말한다. 반면, 근육과 근육 사이의 지방은 근간지방(intermuscular fat) 또는 솔기지방(seam fat)이라고 부른다. 또한 근육 외부를 감싸고 있는 지방은 피하지방(subcutaneous fat)이라고 한다. 따라서 마블링은 근간지방이나 피하지방과 확연히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방송에서는 두루뭉술하게 고기 속의 기름이라고 표현한다. 기자들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닐 터인데 말이다.


더 심각한 진실의 왜곡은 마블링을 국민건강의 독이라고 표현하는데 있다
. 정말 그런가? 한우고기의 근내지방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독과 같은 존재냐는 말이다. 어디서 이런 근거도 없는 추론을 가져 온 것일까? 아마도 필로의 전작 [고기예찬]에 설명된 바와 같이, 미국식 영양학에 포로가 된 기자의 막연한 지식에 기인한 것이라 추정된다.2) 마블링, 즉 근내지방은 근간지방이나 피하지방과 그 지방산의 조성부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지방의 특성과 맛도 다르다.3) 설령, 마블링이 방송에 표현된 대로 살코기 속의 기름이라고 표현된 지방의 총체라 할지라도, 이것의 섭취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현대성인병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은 동물성지방이 문제가 되는 미국이나 유럽 또는 아르헨티나와 호주처럼 식육으로부터 유래되는 동물성지방의 섭취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2010
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들이 1인당 1년에 섭취하는 소고기의 양은 8.8kg으로, 이중 약 40%만 한우고기이고 60%는 수입쇠고기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합쳐도 너무 적게 먹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돼지고기 섭취량 19.3kg과 닭고기 섭취량 10.7kg을 합쳐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섭취하는 육류소비량은 38.8kg 정도에 불과하다.4) 반면, 동물성지방이 현대 성인병의 주요인이라고 지목받고 있는 미국의 육류소비량은 108.1kg이고, 유럽도 76.4kg에 이른다. 또한 방송에 나온 아르헨티나는 96.7kg이고 호주는 92.0kg이다. 참고로 세계 제1의 장수국으로 분류되는 홍콩은 놀랍게도 149.6kg이다.5)


그러므로 이러한 현실적 자료에 기초한 필로의 결론 이렇다
. 만약 고기 속의 지방을 국민건강의 독이라고 표현하려면 우리나라 육류소비량이 미국이나 유럽처럼 지금보다 최소한 2, 3배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한우고기의 마블링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섭취하는 전체 동물성지방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최근의 영양학계와 의생명학계에서는 동물성지방이 현대성인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하게 하나하나씩 설명하도록 하겠다.

 



 

필로가 이 방송을 보는 내내 들었던 의문은 이것이다. 대한민국의 축산, 특히 한우산업이 FTA와 밀려드는 수입쇠고기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깊은 고통 속에 있는 상황에서, MBC는 이러한 마블링의 음모를 기획하고 제작하였을까? 그들은 정말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을 심각히 고민한 결과, 그리고 대한민국의 축산발전을 위해 마블링이 적은 한우고기를 생산해야 된다는 확신이 너무나 확고했기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는 주제를 찾아 고발하겠다는 공명심이나, 그러한 일을 통해 정의롭고 바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투철한 정의감 때문에 방송을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