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육해 오던 재래종 일소로 한우(韓牛)는 우리나라에서 사육하는 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고유한 재래종 일소를 말한다.
고구려 안악3호 고분벽화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문헌에서는 한우의 모습이 적갈색, 흑갈색, 흑색, 줄무늬 등 다양한 색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세종실록에는 ‘왕의 생일, 정월 초하루 등에 제주 흑우가 진상됐다’라는 기록이 있다.
동요에 나오는 ‘얼룩 송아지’와 정지용의 시 ‘향수’와 이중섭의 ‘황소’는 모두 칡소가 모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칡소는 고구려 안악3호 고분에 그려진 3종의 소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소를 키운 역사는 4,000여 년 전부터로 추정되며, 김해 패총에서는 2,000여 년 전의 소뼈가 발굴되기도 했다.
소는 오래전부터 달구지 등 이동수단이었으며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농경에 사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축우로 자리 잡는다.
고대부터 소는 제천의식의 제물로 신성한 존재이며, 농경 시대 동반자로서 ‘생구(生口)’라 하여 가족의 일원으로 간주했다.
한우는 단순히 농사용으로만 이용된 것이 아니라 생활 곳곳에 다양하게 활용됐다. 소의 부산물은 의복이나 약재, 장식용 등으로 활용됐으며 또 국가외교 선물이나 하사품, 군사용으로 이용됐다.
소는 생활문화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세시풍속과 설화, 속담 등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기도 했다. ‘삼국지동이전부여조’에 ‘우가, 마가, 저가…’ 등 6축의 이름으로 관명으로 삼았던 기록과 삼한 시대의 써레에 관한 기록된 점 등을 볼 때 한우는 적어도 2000년 전부터 농경에 이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우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다양성이 말살되고 일본, 중국, 러시아 등으로 반출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조선총독부는 한우 약 150만 마리를 일본 와규(화우) 개량, 식량 조달 등의 목적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 등으로 반출하는 등 착취를 일삼았다.
일본은 수탈을 목적으로 ‘황갈색만 한우로 인정한다’라는 심사표준규정을 만들어 한우의 다양성을 말살하고, 가격을 조정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 규정은 광복 후까지 영향을 미쳐 1969년 한우 개량사업을 추진할 때에도 황갈색 털을 가진 소로 대상을 한정되기도 했다.
한우는 1999년 도체등급제도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면서 1등급 이상 출현율도 매년 증가해 현재는 63.1%일 정도로 품질이 고급화됐다.
또한, 지자체와 공동으로 고유의 한우 품종인 칡소와 흑우를 복원하는 노력도 진행 중이며 칡소 복원은 강원도 축산기술연구센터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현재 강원도에서는 증식, 농촌진흥청에서는 과학적 증명 및 육종으로 업무를 분담해 추진하고 있다.
<자료출처: 농촌진흥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