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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인 11일 오전 경남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로 차를 몰았다. 깊은 산 속에 꼬불꼬불하게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며 영화 '워낭소리'가 생각났다.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늙은 소는 평생 동안 일만 하다 죽는다. 하지만 이보다 더 불쌍한 소도 있다. 몸도 뒤척이기 힘든 좁은 축사에서 자기 동료들의 살로 만든 동물성 사료를 먹고 큰 미국산 소들이다. 광우병을 우려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열풍이 전국을 뒤덮다 잠잠해졌다. 쇠고기 수입은 이 땅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매달 2, 4주 토요일은 소잡는 날



'4월 11일은 소 잡는 날입니다.' 지인이 휴대폰으로 들어온 문자를 보여주며 관심이 있으면 한 번 가보라고 했다. 밀양의 몇몇 축산농들이 도시 소비자들을 상대로 직접 쇠고기 유통에 나섰다는 이야기였다. 그곳까지 누가 쇠고기를 사러 갈까 반신반의하며 길을 나섰다.


축사가 있는 한 마을에 도착해 물어보니 저수지 건너편이란다. 소 키우는 농가들이 아직도 곳곳에 있었다. 저수지를 건너자 '여물통 한우 작목반'이라는 글씨가 써진 건물이 도로변에 나타난다. 주민들로부터 135가구가 사는 감물리 용소마을의 이야기를 들었다. 감물리는 한자로 '甘物里'로 쓴다. 이곳에서 나오는 모든 만물이 달다는 뜻이다. 심지어 물까지 깨끗하고 달다고 소문이 나 생수공장 짓겠다는 걸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저지하는 형편이다.


이전에 이 마을사람들은 거의 집집마다 소를 키웠다. 그런데 미국산을 포함해 쇠고기 수입 개방이 확대되며 소값은 계속 하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세계 곡물값이 뛰며 사료값은 치솟고 있다. 소를 팔아도 사료값도 건지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 밥값을 못하는 식구 중 누군가를 내다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용소마을에는 지금 소를 키우는 집이 30가구가 안 된다. 이건 용소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소 사육농이 처한 풍전등화 같은 현실이다. 남은 사람들도 소를 먹이느냐 안 먹이느냐를 두고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 속에 살아날 길을 찾아야 했다. 용소마을에서 소를 사육하는 여섯 농가가 뭉쳐서 '여물통 한우 작목반'을 결성했다. 소를 키워 무조건 도축장에 넘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유통을 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착한 소가 남긴 착한 가격


쇠고기가 유통되는 과정을 보면 생산자도 소비자도 답답하기만 하다. 소 중간상인들은 축산농가에서 산 가격에 마리당 30만∼40만원의 이문을 붙여 도축장에 넘긴다. 도축장에서는 쇠고기 중간 도매인에게 다시 20∼30%를 붙여서 넘긴다. 여기다 중간 도매인과 쇠고기 소매점의 마진을 더하면 소비자들은 500만원짜리 소를 1천500만원에 먹게 되는 셈이다. 소 축산농이 살려면 유통단계를 줄여야 한다. 작목반이 일요일에 소를 싣고 도축장으로 가면 화요일에 도축된다. 가져간 소가 1등급이 나오면 경매를 통해 그 소를 사 가지고 온다. 혹시 1등급이 안 될 경우에는 1등급짜리 다른 소를 사오는 식으로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도축된 쇠고기는 숙성 과정을 거친 뒤 목·금요일에 포장작업을 해서 토요일에 판매를 한다.


판매장 칠판에 적힌 이날 판매 내용물을 살펴 보았다. 등심 900g, 갈비 600g, 불고기 1.3㎏, 국거리 700g, 특수부위(낙엽살, 치맛살, 안심, 차돌박이) 500g. 이렇게 진공포장 한 묶음 가격이 이날 가격 13만8천원이다. 보통 한 묶음에 14만원대 안팎이다. 한 마리에서는 44개의 진공포장 묶음이 나온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1등급 쇠고기를 이 정도 사려면 적어도 20만원은 넘는다. 착한 소가 마지막으로 남긴 착한 가격이다.


소 축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작목반 박경하씨의 축사라는데 굉장히 청결하다. 짚을 여물로 주었더니 소는 낯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 하늘이 바로 보이도록 지어진 널찍한 축사에서 소들은 여유롭게 생활한다. 통풍이 시원하게 잘 되고 겨도 자주 갈아줘서 깨끗하다. 이렇게 자연에서 키워진 소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다시피 한 소와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소야 사과할게. 좀 전에 널 보고 입맛을 다셨다."


"제발 우리 소를 지켜주세요"


농축산물 판매장 앞의 가건물에 들어갔다. 인심 좋은 용소마을 사람들이 쇠고기 국밥을 서비스로 그냥 퍼준다. 국밥에 든 고기가 다르다. 옆 테이블에서 "아이 구수해"라고 감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눈앞에 펼쳐진 호수를 보며 먹으니 참 시원하다. 고랭지가 되어서 김치도 맛이 있다. 아직 음식점 허가가 나지 않은 탓에 이곳에서는 테이블과 불판만 제공한다. 구매한 고기는 여기서 바로 구워먹을 수 있다. 경치 좋은 여기서 먹을 거면 반찬거리를 준비해 가지고 오면 좋겠다. 낮 12시 가까이 되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부산에서 왔다는 윤창미(금정구 부곡동)씨는 "지난번에 사 가지고 간 고기로 곰탕을 끓여 먹었는데 정말 구수하더라. 오늘도 백화점에서 산 고기보다 색깔이 곱다. 이 고기를 가지고 야외에서 구워 먹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작목반은 매달 2, 4주 토요일에 소잡는 날 행사를 연다. 더 많은 양을 취급하면 품질이 떨어져 앞으로도 이 이상 늘릴 생각은 없다. 주문하면 택배도 가능하다. 근처에 표충사, 얼음골이 있어 구경 삼아 가기에도 좋다. 저녁 노을도 멋지단다. 통상 60%가량은 전화로 예약을 받아서 판매하고 있다. 다음번 소잡는 날은 4월 25일. 판매 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작목반 총무 성영찬(50)씨는 "처음에는 소 한 마리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하루에 소 두 마리분이 다 나간다. 앞으로는 야채도 텃밭에서 직접 뜯어서 먹도록 하고 가을철에는 밤도 줍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인근 마을에서 우리 소도 팔아달라는 제의까지 들어온단다. 어디선가 '워낭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가 우리 소를 지켜 달라고 늙은 소가 부탁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cafe.daum.net/hanwoo119. 011-9534-2985.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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