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원산지표시 악용사례 개선 시급”
한우 프리미엄 이미지 편승
소비자 혼선 심각
섞음표시제 폐지하고 메뉴판에만 표기토록
서울 시내의 한 설렁탕 가게. 식당 입구에 한우사골 설렁탕이라고 표기됐다. 이를 본 소비자들은 한우로 만든 설렁탕이라고 생각하고 음식을 주문한다. 하지만 식당의 벽면 메뉴판에는 한우라는 글씨 크기보다 작게 호주산 또는 호주산·미국산으로 표시됐다. 이 식당의 설렁탕은 한우를 사용하는지, 수입육을 사용하는지 소비자들은 헷갈린다. 이처럼 한우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수입 쇠고기를 제공하는 사례가 적잖은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공동대표 박인례)는 지난 7월 1일부터 15일까지 서울시 소재 524개 음식점과 배달앱, 정육점 등의 원산지 표시실태를 조사하고 이 같은 결과를 17일 발표했다. 전국한우협회(회장 김홍길)는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원산지표시제도의 대대적인 보완과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산지표시제 악용하는 음식업체들=원산지표시제(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의 목적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농산물 및 그 가공품과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조리 음식에 대한 원산지 표시를 관리함으로서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고 유통질서를 확립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함에 있다.
하지만 요식업체들은 원산지표시제를 교묘하게 악용하며 소비자들의 혼동을 유발했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에 따르면 2개 이상의 원산지임에도 섞음을 표시하지 않고 비율을 알 수 없도록 표기하거나 메뉴판에 교묘하게 수입육의 원산지를 작게 표시하는 곳이 적잖았다. 실제 조사 대상 524곳 중 24.6%인 129곳에서 2~3개국 이상의 원산지를 표기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혼동이 우려되는 표시 품목은 갈비탕 등 국물요리가 39%로 가장 많았고 찜류(28%)와 구이류(26%)가 뒤를 이었다.
특히 탕류의 경우 한우를 활용한 육수의 원산지인 한우만을 강조하고 고기는 수입육을 제공하는 식당도 적발됐다. 또 유명 프랜차이즈, A업체는 한우곰탕 제품으로 홍보했지만 실제 한우는 육수에만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육수와 고기의 원산지에 섞음이라고 표기해야 하지만 육수의 원산지인 한우만을 강조하면서 소비자들을 기만한 것이다.
게다가 출입문에는 한우사골 설렁탕, 한우곰탕 등으로 표시·홍보하면서 식당 내 원산지표시판에는 미국산·호주산 등으로 표기한 경우도 확인됐다. 메뉴판과 원산지표시판이 다르게 적힌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산지를 오인할 가능성이 크다.
▲원산지 표시제 개정해라=이처럼 원산지표시제를 교묘히 악용하는 사례가 적잖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원산지표시제의 대대적인 보완과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한우협회는 17일 보도자료에서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한우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저가 수입육이 편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소비자들을 혼동시키며 원산지표시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현행 원산지표시제를 악용할 수 있는 섞음표시제도를 폐지하고 원산지 표시는 메뉴판에만 표기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또 원산지 위반 단속 인원 확대 및 원산지 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도 수반돼야 한다.
현행 법에는 원산지 표시를 거짓으로 하거나 혼동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를 하는 행위, 원산지 표시를 혼동하게 할 목적으로 그 표시를 손상·변경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박인례 공동대표는 “원산지 별도표시판에 표기해야 하지만 잘 안보이는 곳에 배치하거나 물건 등에 가려진 경우도 확인됐다”며 “소비자의 알권리 보장과 경제적 손실 방지를 위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홍길 회장도 “원산지표시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소비자가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원산지를 혼동할 우려가 높다”며 “소비자들의 선택권과 알권리를 보장하고 한우와 더불어 국내산 농축산물의 소비가 활성화되도록 원산지표시제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는 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농어민 신문 이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