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등급제 왜, 어떻게 바꿨나
저지방 열풍에 지방에 대한 몰이해 쌓여 결국 수술 감행
쇠고기 등급제는 정부의 축산분야 정책 중 가장 성공한 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1993년 쇠고기 수입 개방에 대응한 한우산업의 경쟁력 확보 차원의 일환으로 도입된 쇠고기 등급제는 소비자들에게 쇠고기의 품질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확보해 제시하는 구매지표로서 절대역할을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쇠고기의 품질에 있어 부드러움, 즉 연도를 매우 중시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특성을 고려한 근내지방도 중심의 쇠고기 등급제는 고기를 사서 구워먹어 보지 않아도 연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으로 활용되는 등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면서 더욱 빠르게 자리매김하게 됐다.
특히 높은 등급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성이 뚜렷해지며 등급간 가격차가 공고해 지면서 한우농가들의 생산지표와 목표로 적극 활용되는 등 품질 중심의 한우산업 개편을 가져오면서 한우산업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같은 배경에는 ‘투플러스’로 통칭되는 한우 고급육에 대한 마켓팅 효과와 함께 정부를 비롯한 전 한우업계가 한우의 가치를 가격이 아닌 품질 부분에 명확한 방점을 찍으면서 차별화 노력을 기울인 것이 정책의 효과를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엔 쇠고기 등급제가 줄세우기식의 등급제라는 비판이 사그러들지 않았지만 이같은 서열식 등급제가 오히려 높은 등급의 한우고기에 대한 소비심리와 소비층을 더욱 견고하게 형성했다는 역설적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수십 여 년간 승승장구 했던 쇠고기 등급제 역시 변화의 요구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지방을 기피하는 소비트렌드 확산 등이 그것이다.
1+등급과 1++등급 등 최상위 등급의 한우고기 생산을 위해선 장기비육을 기본으로 한 지방 침착이 사양관리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데, 근내지방 침착을 위한 이러한 장기비육이 불가식 지방 생산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부터 쇠고기 등급제는 소비자단체 및 정치권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지방의 역설’ ‘저탄고지’ 열풍 등 오히려 지금은 지방에 대한 기피와 공격적 주장이 크게 줄었지만 3~4년 전 식품외식소비 트렌드였던 저지방 열풍은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한우 사육에 장기비육을 위한 과도한 사료비가 투입되며 이는 건강에 좋지 못한 고기를 생산한다는 식의 주장이 불붙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장은 2015년 전주MBC에서 방영한 ‘마블링의 음모’라는 다큐멘터리로 정점을 찍었고 그로부터 수년간 한우고기의 마블링은 각종 방송 등 미디어와 소비자단체, 심지어 농림축산식품부의 국정감사에서까지 질타를 받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됐다.
‘잘나가던’ 쇠고기 등급제에 정부가 ‘수술’을 감행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달라진 등급제 사양방식·기간 변화 가져올까
과도한 지방 침착 부분에 대한 공격을 의식한 정부는 이번 등급제 개정에서 1++등급 기준을 완화하는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
지금까지는 지방함량이 17% 이상(근내지방도 8,9번)이어야 만 1++등급을 받았지만 달라진 등급제에선 지방함량이 15.6%이상(근내지방도 7, 8, 9번)만 되어도 1++등급을 받을 수 있게 했다.
1+등급은 지방함량 13~17%(근내지방도 6,7번)에서 12.3%~15.6%(근내지방도 6)로 조정했다. 여기에 평가항목(근내지방도, 육색, 지방색, 조직감 등) 각각에 등급을 매겨 그 중 가장 낮은 등급을 최종 등급으로 적용하는 ‘최저등급제’를 도입했다.
근내지방도로 등급을 결정하던 기존 방식에서 육색과 지방색, 조직감 등에서 결격 사유가 발생할 경우 이를 최종 등급에 반영함으로써 지나치게 마블링에 집중된 등급제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농림부는 이번 쇠고기 등급제 개편과 관련한 자료에서 “쇠고기 등급제도는 국내산 쇠고기의 고급화, 수입산과의 차별화에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지만 마블링 중심의 등급체계가 장기 사육을 유도하여 농가의 생산비 부담이 늘어나고, 지방량 증가로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트렌드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면서 “소비트렌드 변화와 농가의 생산비 절감을 고려하여 마블링 중심의 등급체계 개선에 초점을 둔 등급제 개편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