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왜] 30만원 넘던 한우 내장 값 8만대로...
지난 1년간 소 부산물 시장에 무슨 일 있었나
곱창열풍으로 가격 천정부지 솟자 결국 외국산에 시장 내줘
마장동 부산물 상인들이 육성으로 전하는 ‘소 부산물시장 현주소’
“30년 넘은 소 부산물 사업에서 이렇게 높은 산(1년 전)도 이렇게 깊은 나락(현재)도 난생 처음입니다. 현재 소 부산물 시장에서 한우는 완전히 죽었고, 수입육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인터뷰를 사양했던 마장축산물 시장의 부산물 유통업체 대표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음성공판장의 전신인 성내동 도축장 시절부터 부산물 유통을 해왔다는 ㅅ유통 김 모 사장은 마장축산물 시장에서도 부산물 거상으로 통한다. 내로라하는 유명 곱창집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소 부산물 유통 상황에 대해 이같이 전했다.
“1년 전만 해도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곱창열풍이 불어 난리가 났던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부산물 상인들 너나할 것 없이 돈 좀 벌었습니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때 누리던 호황의 몇 배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30만원 넘던 한우 내장 값 8만대로 ‘폭락’
2019년 5월말 당시만 해도 음성공판장의 내장 낙찰 가격은 보당(1마리당) 30만원이었다. 하지만 4개월만인 9월말 21만 5천원으로 절반 수준 가까이 내렸다. 당초 공판장의 부산물 입찰은 4개월 간격으로 열리지만 지난해는 이례적으로 한 달을 앞당긴 12월말에 열렸다. 20만원대 가격에도 소비가 부진해 팔리지 않는다는 부산물 상인들의 민원과 호소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12월 말 경매에서 낙찰가격은 보당 8만2580원까지 떨어졌다. 한우협회 등 농가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두·내장을 합쳐 40만원이 넘던 소 부산물 가격이 1년 만에 반동강 났기 때문이다.
부산물시장에선 한우보다 인기가 좋은 육우 내장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보당 50만원을 호가하던 육우 내장도 10만 원대까지 가격이 주저앉았다.
이같은 상황은 지난해 하반기 고령공판장에서 내장 입찰이 모두 유찰되면서 예견된 상황이기도 했다. 일부에선 가격을 싸게 받기 위한 상인들의 담합 때문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지만 상인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산물 상인들 특성상 단체행동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시장 상황이 너무 안좋다보니 상인들이 잔뜩 움츠린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음성공판장 입찰에서도 상인들 모두 얼어붙은 시장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에 누구도 가격을 쓰지 못한거였죠.”
소 부산물 가격 하락의 절대적 요인은 내장이 차지한다. 소 머리와 우족의 경우 소비패턴 변화로 이미 수년전부터 가격이 하향‧조정되어 큰 폭의 가격 조정이 없었던 반면, 내장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농가들의 부산물 수입에 직격탄이 날아들었다.
한우협회는 즉시 성명을 내고 부산물유통구조 개선과 공판장 안에서의 부산물 1차가공 완료 등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지금처럼 꽁꽁 얼어붙은 한우 부산물 시장에선 ‘그 어느 것도 약발이 먹힐 수 없다’는 게 부산물 상인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하루아침에 얼어붙은 한우 부산물 시장...왜?
가격 폭락의 원인은 급격한 소비위축에 있다는게 부산물 상인들의 한결 같은 증언이다.
알려진 것처럼 소 곱창은 2018년 6월 국내 유명 아이돌이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곱창 먹방’을 선보이며 순식간에 열풍으로 이어졌고, 시장에선 곱창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그때 당시는 상인들 모두 즐거운 비명을 질렀었죠. 기존에 거래처에서도 주문량이 몇 배씩 늘어난 데다 업종 전업이나 신규 창업집이 계속 늘어났고 기존 고깃집들도 곱창을 함께 취급하면서 눈코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솔직히 돈도 꽤 벌었습니다.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고, 가격이 오르니 부담도 컸지만 장사가 잘되니 할 만했죠. 헌데 이렇게 인기가 한순간에 꺼질 줄 몰랐습니다.”
마장축산물 시장에서 부산물 장사만 20년이 넘었다는 이 모사장의 말이다.
<서울시내 유명 한우 프렌차이즈 곱창집인 ○○한우 곱창집의 천호점. 한우곱창만을 취급하다(왼쪽) 지난해 상반기부터 모두 호주산과 미국산 등 외국산으로 식재료를 변경했다(오른쪽).>
아이돌 가수로 촉발된 곱창의 인기는 1년을 넘지 못했다고 상인들은 회고했다.
2018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딱 1년까지였다. 공판장에서의 낙찰가격은 2019년 5월 까지만해도 보당 30만원을 유지했다. 하지만 설마설마 하며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다.
곱창 주문이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뚝 끈 긴 것이었다.
연평균 12~13만원 가던 소 내장가격이 2배 넘게 오르며 30만원을 넘어서자(가공비를 합하면 35만원 선)매입 가격에 부담을 느낀 곱창집들은 판매가격에 곱창가격 상승분을 조금씩 반영해 갔지만 가격을 한정없이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1인분 중량을 줄이거나 혹은 지방을 많이 붙이거나 하는 방식으로 연명해오다 곱창집들이 모두 손을 든고 만 것이다.
중소규모 곱창집들은 모두 폐업을 선택했고, 그나마 여력이 있는 곱창집들은 다른 분야로 업종을 전환하고 나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맛집으로 유명해진 곱창집이나 급격히 늘어난 곱창프랜차이즈들은 거의 모두 한우곱창에서 수입곱창으로 거래선을 변경했다.
“화사가 나와서 먹었던 ㄷ곱창집도 모두 제가 물건을 납품했었습니다. 군자본점, 장안점, 신사와 선릉점까지 저도 주문량을 공급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었죠. 서로가 윈윈했습니다. 내장 유통 수 십년에 이런 호황도 누리는구나 했었죠. 하지만 한순간이더라고요. 체인점 20개를 확보한 1등 거래처 ㄷ곱창이 지난해 모두 외국산으로 전환하면서 저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60~70보 들어오던 주문량 10보도 안돼
부산물 상인들의 어려움도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30만원에 낙찰받은 내장의 주문이 끊기자 결국 금값의 내장들을 냉동고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마장동 부산물 유통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김모 대표에 따르면 일일 60~70보 들어오던 주문이 최근 10보도 채 안될 정도로 주문이 뚝 끊겼다.
“고기도 냉동하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지만 내장 냉동에 비할 바 아닙니다. 내장은 그야말로 신선함이 생명이자, 경쟁력이어서 냉동하는 순간 값어치는 원물가격의 30%에도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 현재는 지난 1년간 누렸던 이익의 몇배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쌓이기 시작한 내장 재고물량은 상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10톤 미만에서 많게는 수 십여톤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여기다 곱창은 물론 함께 팔리던 염통과 같은 내장 부산물 수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마장동과 음성공판장 인근 냉동고는 소 부산물로 가득 차 있다.
<유명 아이돌 가수가 출현해 주목받았던 서울 군자동의 ㄷ곱창은 한우곱창 맛집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후 장안점과 신사, 선릉점까지 점포를 확대하다 곱창 프렌차이즈로 20군데까지 점포를 늘려갔으나 지난해 수입곱창으로 재료를 모두 바꿨다.>
3년 전 대비 287% 폭증...국내 시장 잠식한 수입곱창
곱창 열풍이 휩쓸고 나간 부산물 유통업계엔 한숨과 원망뿐이다.
마장동축산물시장 부산물협회 관계자는 “우스갯소리지만 곱창 열풍을 만들어낸 화사가 원망스럽다는 말들을 많이 하십니다. 부산물 상인들은 수십 여 년동안 평균 3보 정도를 낙찰 또는 수의계약으로 받아 그럭저럭 장사를 이어온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호황인 시절이 그립다기보다 큰 돈은 못벌어도 걱정없이 장사했던 그 이전이 그립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내장의 수입량은 2018년 전국적인 곱창 열풍을 계기로 크게 늘었다.
소비트렌드 변화에 따라 소머리국밥 등에 사용되는 머릿고기 등의 수입은 예년에 비해 줄거나 비슷한 수준인 반면 곱창 등 내장 수입량이 크게 늘었다.
농림축산검역검사본부에 따르면 2016년 3559톤 수준이었던 소 곱창(소창자) 수입은 2018년 8763톤에서 지난해 1만3800톤으로 3년 동안 무려 287%가 늘었다. 소 막창(소위) 역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수입량이 1만톤을 넘어섰다.
국내 부산물 소비의 인기는 수입축산물을 취급하는 업체나 호주와 미국 등 주요축산물 수입국가들에게도 호기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목초를 먹여 키운 내장은 잡내가 심하다는 평가가 많아 쇠고기와 마찬가지로곡물을 먹여 키운 내장 수입이 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수입과 한우 내장을 함께 취급하는 부산물 상인 박 모씨는 “곡물을 먹여키운 소 내장은 잡내가 적고 지방색깔도 풀만 먹은 소보다는 누런색이 덜해서 소비자 거부감도 덜해졌다”고 전했다.
소 내장 수입량은 최근 2~3년새 폭등새를 보이고 있다. 특히 소 창자(곱창)의 수입은 3년전 대비 287%가 늘었다. 2018년 곱창 열풍 이후의 수입량 증가가 눈에 띈다. 소머리 국밥 등 탕국 수요가 감소하는 영향으로 머릿고기 등의 수입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소 내장 수입 동향. 소 창자와 위 등 내장 부산물의 수입 추이다.>
수입으로 돌아간 시장... 언제 회복될까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것을 상인들 모두 절감하고 있습니다.”
아침 11시. 농협음성축산물공판장에서 도축을 마친 소 내장 등 부산물이 도착해 상인들이 이를 받고 있다. 부산물 상인들은 "한우 곱창 맛을 아는 소비자들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며 실낱같은 희망을 얘기했다.
1월 1일부터 한우 내장 가격이 8만 원 대로 하락했지만 아직 소비는 되살아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말이다. 심각한 '파동' 을 겪어 여전한 후유증을 겪고있는 부산물 시장이 하루아침에 회복되는 것은 기대하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짧게는 5년에서 30넘게 부산물을 유통해온 상인들은 회복되는 데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수입산에 점령당한 시장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피력했다.
맛과 품질에서 수입산은 결코 한우를 이길 수 없다는 게 어려운 환경속에서 이들이 희망을 갖는 이유다.
ㅅ식품 김모 대표는 “수입산은 당초 전골 용도로 국내에 들여온 것들입니다. 1차 가공처리되어 깨끗하고 취급하기도 좋긴하지요. 하지만 고소한 곱이 꽉 들어찬 한우곱창과 수입산의 맛은 비교자체가 안됩니다. 한우곱창 맛을 아는 소비자들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어렵고 힘들어도 버텨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장축산물 시장 부산물 상인들의 바람은 하나로 집약됐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나 혹은 낮은 가격이 아닌 예측가능한 안정적인 가격이다.
“저희는 소 값이 높을 때나 낮을 때나 도축물량이 많거나 적을 때나 부산물을 가공해서 음식점들에게 공급하는 개미군단과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농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가격이 너무 떨어져도 장사가 안되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가격이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정한 수준에서 형성되어 안정적으로 장사하는 것 그것 하나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