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만 판매’ 현수막 내걸고 외국산 팔면 범죄
알아두면 쓸모 많은 법률상식 (20)농축산물 원산지
허위 친환경 무농약인증도 소비자 신뢰 무너뜨려 엄벌
시장에서 물건값을 흥정할 때 “밑지고 판다”는 상인의 ‘엄살’을 누구나 한두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세상살이에서 어느 정도의 과장과 거짓말은 알고도 넘어가거나 용인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과장과 거짓말의 정도다.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 특히 농수축산물은 소비자의 신뢰와 직결되는 만큼 중요한 내용을 속였다간 법적 책임을 지게 되니 유의해야 한다.
A씨는 ‘우리 집은 한우만 판매합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한 건물에서 식당과 정육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광고 선전판, 식단표 등에도 한우만을 취급한다고 적어놓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절반만 진실이었다. 정육점에선 한우만 팔고 있었으나 식당에서는 수입 소갈비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 손님들은 당연히 한우라고 믿고 갈비를 먹어오다 뒤늦게 수입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개,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뒤늦게 “정육점에서만 한우를 판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처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법원은 “‘한우만을 판매한다’는 취지의 광고가 음식점에서 쇠고기를 먹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우만을 판매하는 것으로 오인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상품 광고에 다소의 과장·허위가 수반되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된다”고 봤다. 하지만 “거래에 있어 중요한 사항에 관해 구체적 사실을 거래상 신의성실의 의무에 비춰 비난받을 정도의 방법으로 허위로 고지한 경우에는 기망행위(속임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B씨는 각종 농산물을 산지에서 넘겨받아 도소매상에게 연결해주는 농산물 유통업자였다. B씨는 자신이 받은 일반 찹쌀·마늘·강낭콩 등의 농산물이 친환경 무농약인증을 받은 것처럼 인증서와 잔류농약검사서를 도용했다. 양파는 전남 무안이라고 원산지까지 속였다. 그리고 농산물에 무농약인증마크를 붙여 중간업자인 C씨 등에게 웃돈을 받고 넘겼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C씨 등은 이 농산물을 다시 높은 가격으로 시중에 유통했다.
하지만 1년간 수억원대의 수익을 올린 그들은 단속에 걸리고 말았다. 법원은 B씨에게 “정직한 농업을 실천하는 농민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건강한 식품을 기대하는 소비자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C씨는 가담 정도가 낮았지만 거액의 벌금형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A씨와 B씨처럼 대규모로 영업하는 경우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국산 곡식에 외국산을 섞은 다음 국산인 것처럼 판매한 양곡점 주인도 처벌받은 사례가 있다. 농축산물 등 상품을 구매하는 기준이 되는 중요한 사항을 속이거나 감추는 것은 사기죄 등 범죄가 된다. 법원 판례로 볼 때 ▲농축산물의 원산지를 속이는 행위 ▲제품의 생산일자·유통기한 등을 속이는 행위 ▲특정 농산물이 질병에 특효가 있는 것처럼 허위 광고해서 고가로 판매하는 행위는 모두 사기에 해당한다.
최근 중국산 참조기를 국내산 영광 굴비로 둔갑시켜 백화점 등에 납품한 업자 D씨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그는 국내산과 중국산 굴비의 차액으로만 7년간 수백억원대의 폭리를 취했다. 주범격인 D씨에게 선고된 형량은 징역 3년6개월. 지역특산품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소비자에게 불신을 안겨준 행위의 대가치고는 결코 높지 않은 형량이었다.
먹을거리를 속여서 파는 일은 엄연한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농민신문 김용국<법원공무원 겸 법률칼럼니스트, ‘생활법률 상식사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