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협회 정읍시지부가 운영하는 가축경매시장은 연간 2000두의 송아지 거래가 이뤄질 만큼 활성화됐다. 축산법 개정으로 오는 11월 27일 합법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매월 둘째 주 열리는 가축시장에 참석한 사람들이 송아지 경매에 참여하고 있다. |
제도권 밖에 있었지만
가격정보에 취약한 농가
가축시장 개설 불가피
질병·생산이력 관리 등 철저
공정 경매시스템 등 경쟁력
다른 지역보다 송아지가격
20만~40만원 비싼값 거래
불안 떨치고 새출발 다짐
지난 9일 찾은 전북 정읍시 북면에 위치한 가축경매시장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매달 둘째 주 목요일에 열리는 경매시장에 송아지를 팔거나 사기 위해 그곳을 찾은 것이다. 경매 참가자들은 송아지 정보와 실물을 비교하며 입찰가를 고민한다. 9시에 시작된 경매는 최고가 577만원에 이르는 송아지가 거래되는 등 총 131두의 송아지가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
사실 전국한우협회 정읍시지부가 운영하고 있는 이 시장은 합법적인 가축시장이 아니다. 현행 축산법에는 축협만 가축시장을 개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축산법 34조에는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른 축산업협동조합이 가축시장을 개설·관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불법임을 알고도 생산자단체가 직접 가축시장을 개설한 것은 당시 불가피한 상황 때문이었다. 2000년 구제역 발생과 당시 정읍축협의 경영부실로 인해 정읍의 가축시장은 폐쇄됐다. 결국 농가들은 문전거래 또는 논산·장성 등 인접 가축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나희주 전 한우협회 정읍지부장은 “가격 등 정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농가들은 문전거래를 하면 상인들에게 휘둘려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인접 지역으로 가기엔 거리·시간 등에서 불편했다. 그래서 정읍 내에 가축시장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필요성 때문에 정읍시지부를 중심으로 가축시장 개설을 추진했고 2004년 9월 생산자단체가 운영하는 첫 가축경매시장이 탄생했다. 하지만 “항상 제도권 밖이라서 조마조마했다”는 박승술 정읍한우육종협동조합 이사장의 설명처럼 정읍 가축경매시장은 불안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불법 건축물에 대한 축협의 고발로 800만원의 벌금을 낸 적도 있다.
그래서 한우협회 정읍시지부는 철저한 질병 및 생산이력 관리, 공정한 경매시스템 도입 등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정읍시지부 직원들은 경매출하 2주 전에 농장을 방문해 구제역·브루셀라·결핵접종 실시 여부·송아지 외형 확인 등의 예비심사를 실시하고 주요 전염병에 대한 백신 접종과 구충제 투여 등을 진행한다. 어미 브루셀라 채혈, 전자경매시스템 도입, 정읍시지부가 이력제를 통해 관리하는 송아지만 경매 참여, 인공수정사들과의 MOU를 통해 암소 및 농장에 맞는 개량 진행 등도 정읍시지부가 운영하는 가축경매시장의 강점이다.
박승술 이사장은 “2004년 9월 4일 첫 번째 경매에서 24마리가 비싸게 팔려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줄 알았지만 너무 비싼 가격으로 인해 이후 5번째 경매까지 소를 팔아달라는 농가도, 사려는 농가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2005년 3월 경매에서 송아지가 전부 팔려서 깜짝 놀랐다. 첫 번째 경매에서 송아지를 사간 후 키웠던 사람들이 정읍 송아지의 우수성을 느끼고 다시 사러 온 것이다. 첫 번째 경매에서 팔려간 송아지들이 도축장으로 출하한 2년 후에는 정읍산 소의 우수성이 더욱 확산되면서 가축시장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박 이사장은 또 “출하 전에 백신을 놓는 곳은 아마 전국에서 유일할 것”이라며 “당시 바코드에 정읍산 소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표기했고 생산이력제도 시행 초기부터 참여하는 등 철저히 관리하면서 정읍산 한우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농가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도 가축경매시장의 성장, 개량 및 육종에 앞장선 지역으로 인식되는데 뒷받침했다. 실제 2018년 전자경매시스템 도입을 위해 한우농가들은 스스로 8000만원을 모았고 회원농가들은 송아지 매매수수료와 별도로 2004년부터 마리당 2만원의 한우개량자조금을 납부하는 등 농가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이 같은 관리와 농가들의 참여 덕분에 정읍산 송아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20만~40만원 정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실제 이날 가축시장에서 거래된 수송아지의 평균 거래가격은 472만원(혈통 경매 기준)으로 전국 평균 450만4000원(축산물품질평가원, 6~7개월령 기준) 보다 22만원 높았다. 암송아지 평균 가격도 전국 평균(340만5000원) 보다 38만5000원 비싼 379만원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정읍시지부 농가들은 불법 가축시장에 대한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5월 26일 축산법 개정으로 정읍시지부가 운영하는 가축시장도 합법화의 길이 열렸다. 이번 개정안에 가축시장 개설 권한을 축협 외에 농협법에 따른 축산업의 품목조합과 민법 제32조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까지 포함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27일부터 정읍시지부 같은 생산자단체도 가축시장 개설자로 참여할 수 있다.
정읍시지부는 정읍 가축시장의 합법화를 계기로 전국에 축협 외에도 생산자단체·품목조합 등이 운영하는 가축시장이 많이 개설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가축시장 개설권자들이 농가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축산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승술 이사장은 “제도권에 들어오기까지 약 16년이 걸렸다. 합법화 절차를 마치고 나면 큰 소에 대한 경매시스템도 준비하는 등 좋은 환경의 경매장으로 만들 계획”이라며 “그동안 농가들은 축협이 못마땅해도 그곳에 출하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지만 이번 축산법 개정을 통해 정읍 같은 모델을 전국에 20개 이상 만들면 축협과 생산자단체 모두 선의의 경쟁을 통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역에 하나의 조직 밖에 없다면 그 조직이 챙기지 못하는 음지가 생길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조직이 있다면 그 음지를 최소화 할 수 있다”며 “정부가 축산법 개정에 맞춰 다양한 조직들이 성장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