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한우 농가수는 15만 1,191농가에서 2013년에는 13만 1,822농가로 1년간 1만 9,369농가가 사육의 꿈을 접었고, 이듬해인 2014년에는 전년과 비교해 2만 2,244농가가 폐업을 선언하면서 최근 20년 한우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구조조정 칼바람에 시달렸다.
다음 해인 2015년에도 약 1만 5천 농가가 폐업의 길에 동참하면서 3년간 무려 5만 7천 농가가 무너지는 피의 역사를 쓰게 됐다. 이후 조금씩 산업이 안정되면서 감소율은 크게 줄었지만 2012~2015년 악몽은 한우 농가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겨주며 한우산업에도 큰 생채기를 냈다.
이후 한우업계에서는 가격 폭락으로 인한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작업에 돌입한다. 때마침 한우협회 수장에 김홍길 회장이 당선되면서 한우 산업의 안정된 골격을 만드는 중책이 맡겨졌다. 김 회장은 지속 가능한 한우 산업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협회 본연의 운동체 역할에 충실하면서 농민단체의 중요성을 대·내외에 각인시켜 나갔다.
‘무능·외면’ 일관 신뢰 잃은 정부
농민 자주(自主) 꿈틀
한우인의 트라우마에 정부의 ‘무능’과 ‘외면’은 기름을 부었다. 정부가 설계한 송아지생산안정제는 나사 빠진 바퀴처럼 제대로 작동할 수조차 없었고, 각종 FTA와 TPP 등 시장 개방 국면에서도 정부는 농업을 지렛대 삼아 협상의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나갔다. 농업을 향한 정부의 비뚤어진 시선에 농업계뿐만 아니라 한우인들은 큰 상처를 받았다.
특히 농업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을 보호하고 이끌어가기는커녕 기획재정부 눈치를 보며 예산을 핑계로 농민단체가 제안하는 각종 농업 정책에 어깃장을 놓기만 했다. 한우 농민들은 정부의 모습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농민 스스로 ‘농민이 잘 사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으며, ‘자주(自主)’라는 두 글자를 뼛속 깊이 새겼다.
한우협회 축산 현안 돌파 앞장
운동체 DNA로 축산업 구심점 역할
축산업 중 한우 산업은 가장 역동적이고, 농가는 운동체 성격이 강한 축산 농민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미 기업화가 진행된 양계산업은 닭고기 기업을 필두로 한 굵직한 업체들이 시장을 호령하고 있으며, 기업화가 상당 부분 진척된 한돈 산업도 기업 경영 마인드를 가진 농민이 대다수인 것과 대비된다. 때문에 축산업의 맏형 역할은 한우 농민이 도맡고 있다. 10만 농가로부터 나오는 힘을 바탕으로 풀기 어려운 축산 현안을 돌파하는 동력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타 축종과 협업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등 축산업 선봉에 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우산업에 기대는 농민이 많을수록 가격 폭락과 같은 충격에 수많은 영세 농가를 보호해야 하는 숙제도 덩달아 껴안고 있어 지속 가능한 한우 산업은 축산업의 명운과 비견될 정도로 중요한 이슈가 됐다. 한우협회는 축산이라는 카테고리 내에서 산업이 결집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하며 그 중심에 한우 산업이 자리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 나갔다. 농협 적폐 청산 이슈가 불거졌을 때 유일하게 한우협회가 선봉에 서며 농업 개혁을 부르짖었던 사건은 축산에서 한우의 족적을 선명하게 남기고 농민단체의 위상까지 챙기는 계기가 됐다.
'사료·유통'으로 청사진 구성
협회 전략 사업으로 육성
2015년 한우협회의 새로운 출발과 동시에 협회가 나갈 전략을 짜는 자리에서 '사료'와 '유통'이 축산 농민의 자주성을 지켜주는 핵심 지표라고 선언한다. 당시 한우 농가들은 한우 주 출하처로 음성 공판장에 목을 매고 있었고, 경영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룟값 상승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룟값에 대한 부담을 덜고 음성에 집중된 유통망을 해결한다면 농가의 출하 선택권 등 사육 주권을 되찾을 수 있는 단초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협회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직거래 유통망 사업부터 단추를 꿰어 나갔다. 농민이 직접 유통에 참여한다는 개념은 획기적이었으나 농가와 구매자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기란 쉽지 않은 숙제였다.
직거래유통망 시작 초기 농가 구매자 모두의 불만으로 사업이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몸살을 앓았지만 협회와 담당 직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조금씩 견고해졌고 시스템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거래 업체 수를 늘려나가는 한편 출하두수도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사업 초기 2,272두에 그쳤던 출하 실적도 3년 차인 2019년 4,049두를 기록, 2배의 가까운 실적을 올리며 직거래유통망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 성과를 거둔다.
직거래유통망 적기 출하 장점
'올바른 유통 시스템' 출구전략
직거래유통망 개설의 의미는 단지 농민들의 출하 선택권 보장이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우 농가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적기 출하'에 대한 숨통을 틔워줬고, 음성 공판장이라는 거대 유통망의 견제 역할을 함은 물론 실핏줄처럼 얽혀있는 지역 도축장을 활성화하는 데도 톡톡한 역할을 해왔다. 음성 공판장에 출하가 몰리면 지역 도축장 경영은 악화되고, 지역 출하 물량이 줄면 대량 구매를 원하는 부산물 유통인의 발길이 끊어져 결국 음성 공판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서영석 전국한우협회 유통국장은 “유통망의 독과점은 일반 이용 도축을 이용하는 농가들에게 유통 선택권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진다”면서 “협회 전용 직거래유통망은 한우를 키우는 농민이라면 누구든 직·간접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유통”이라고 정의 내렸다. 이어 “좋은 가격을 보장해 주고 건전하고 올바른 유통 시스템을 만드는 게 직거래유통망의 출구전략”이라고 덧붙였다.
한우협회 전용 사료 농가 소득 '쑥쑥'
직거래유통망과 패키지 전략
한우협회가 구상했던 ‘사료’를 향한 의지도 결국 협회 전용 OEM 사료를 탄생시키는 결실로 이어졌다. 협회 전용사료 론칭은 농협사료는 물론 글로벌 기업 사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한우 농가의 사료 선택권을 확대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그동안 들썩이는 사료가격의 최대 피해자였던 한우 농민들에게 산업에 종속되지 않고 주체적인 한우 산업으로 나가는 데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사료 시장은 농가들이 외상거래를 기본으로 하는 통에 많은 부채에 시달리고 있어, 사료를 바꾸는 모험에 소극적이란 점에 착안, 협회는 농민들에게 최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가격을 최대한 저렴하게 하기 위해 협회 이익 ‘제로’를 실현한 협회 전용 OEM 사료는 비육우 사료 시장의 ‘다크호스’로 부상하면서 농가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협회 사료는 포당 최하 1,500원의 가격 차이가 나면서도 높은 품질을 자랑해 농가들의 입소문만으로도 시장을 넓혀가는 성과를 이어 나가고 있다.
최근 횡성축협에서 축협 사료를 사용하지 않는 농가들을 조합원에서 제외하면서 조합원이 축협을 상대로 소송을 불사, 1심에서 패소했지만 2심에서는 농가의 손을 들어준 사건은 협회의 사료 확대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홍길 회장은 “1심 재판 결과가 협회 OEM 사료를 사용하는 회원, 지역 축협이나 농협중앙회에서 생산하는 배합사료를 사용하지 않는 조합원을 제명할 수 있는 근거로 악용돼 축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었지만 2심에서 승리하면서 농가들의 사료 선택권을 높이는 상징적인 결과를 도출했다”면서 2심 재판 결과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협회는 앞으로 협회 전용 OEM 사료를 직거래유통망과도 톱니바퀴처럼 연결해 유통망과의 패키지 전략으로 한우 농민에게 어필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우협회의 실험 개혁의 스타트라인
지속 가능한 한우산업 새로운 질서 기대
협회가 한우산업 던진 사료·유통 혁신은 한우 농가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농민 중심 한우산업으로의 재편을 꿈꾸게 하는 개혁의 스타트라인이다. 그 어떤 농민단체도 이루지 못했던 생산자 단체의 경제사업과 유통사업. 뉴노멀(New Normal) 시대 한우협회의 실험은 농민단체의 방향에 대해 한우협회가 농축산업계에 던지는 질문이다. 농민단체가 구현하는 새로운 질서. 한우협회가 앞으로 어떻게 답해 나갈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농축유통신문 박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