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027 공동농업정책 개혁안’ 주요 내용 살펴보니
식량안보 위기 대응 위해 과일·채소·쇠고기 등 포함
‘농민’ 소득보조 여론 높아 생산활동 등 미미하면 제외
청년창농직불금도 늘리고 기후변화 대응·환경보호 강화
유럽연합(EU)의 공동농업정책(CAP)이 다시 한번 변화한다. 회원국들이 앞으로 적용할 ‘2021∼2027 CAP 개혁안’이 유럽의회에 제출돼 있고 이를 토대로 한 장기 예산계획도 의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직불금과 농촌 개발 등 유럽 농정의 기본 틀을 7년 단위로 제시하는 CAP의 이번 개혁안은 ▲생산연계직불 확대 ▲‘진짜 농민’ 개념 도입 ▲청년창농직불금 확대 등 우리나라 농정에 참고할 만한 조치를 포함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2021년부터 시행될 유럽 농정 개혁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생산연계직불 확대=2014년 CAP 개혁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됐던 생산연계직불이 보다 확대된다. 개혁안은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측면에서, 그리고 특정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특정 부문과 생산에 대한 생산연계직불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곡물과 유지작물은 물론 과일·채소·쇠고기·낙농품까지 대상에 포함된다. 그동안 시행해왔던 면화작물에 대한 직불금도 계속 유지된다. 다만 규모는 세계무역기구(WTO)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정할 수 있다.
WTO는 특정 작물의 생산을 유발하는 각국 정부의 지원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는 2003년 생산과 연계된 직불금을 폐지했으나 2014년 개혁에서 이를 되살리고 이번엔 여지를 더 넓혔다. 농산물 생산을 자극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에도 2010년 이후 국제 농산물가격이 하락한 점을 고려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기후변화 등으로 고조되는 식량안보 위기도 농업 생산 장려 카드를 꺼내 들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우리나라는 올해 공익직불제를 도입하면서 그동안 운영했던 쌀 변동직불제 등 생산연계직불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하지만 낮은 식량자급률과 채소류 수급불안 등 고질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만큼 유럽의 직불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민·농업활동 등 새롭게 정의=개혁안은 직불금 수령 대상으로 ‘진짜 농민(genuine farmers)’의 개념을 제시했다. 유럽 국가들 사이에 농민에 대한 소득보조가 필요하다는 인식과 함께 실제 농업 생산에 기여하는 농민들을 선별 지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게 형성되고 있어서다.
진짜 농민은 2013년 자격이 없는 수혜자에게 직불금이 흘러가는 사례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농민(active farmers)’ 개념을 도입한 뒤 세부적인 사항을 부가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공항·운동장을 이용해 농업을 하거나 전체 경제활동에서 농업활동이 차지하는 몫이 미미한 이들은 진짜 농민에서 제외되는 식이다. 회원국들은 대상자의 소득, 농업노동 투입 조건 등을 따져 진짜 농민 여부를 가리게 된다. 또 ‘농업활동’은 농업 생산뿐 아니라 농지 등을 재배·방목 유지에 적합한 상태로 유지하는 활동까지 포함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는 ▲1000㎡(약 303평) 이상의 농지에서 농작물 재배 ▲1년 중 90일 이상 농업 종사 등으로 농업인을 정하고 있지만, 도시민들도 이런 조건을 쉽게 만족시킬 수 있어 각종 농업정책의 수혜 대상이 되는 ‘농업인’의 정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년창농직불금 늘리고 환경조치 강화=전체 직불금 예산의 ‘2% 이내’로 지출할 수 있었던 청년창농직불금은 앞으로 ‘2% 이상’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창농 청년과 사업체에 대한 지원금도 최대 10만유로(약 1억3000만원)까지 지급할 수 있다. 청년 지원은 이번 개혁안에서 대표적으로 강조되는 영역이다. 농업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 확보 차원에서 청년농 유입에 공을 들이는 유럽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EU가 2050년까지 기후중립국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유럽 그린딜’과 보조를 맞춰 개혁안이 기후변화 대응, 환경 보호, 경관 보전을 주요 목표로 제시한 점도 주목된다. 차기 CAP 예산의 40%가 이 3가지 목표에 집중 투입된다. 구체적 수단의 하나로 기존 의무시책인 녹색직불금을 폐지하는 대신 일종의 선택형 직불인 생태직불금을 도입한다. 회원국들은 정밀농업, 유기농업, 저탄소농업, 동물복지 축산 등 교차준수의무 이행 수준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활동을 명시해 이 제도를 의무 시행해야 한다.
이정석 주벨기에·EU대사관 참사관은 “EU가 농업분야에서 환경성을 강화하는 것은 향후 글로벌 영역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가기 위한 포석”이라며 “농약과 비료·항생제 감축과 기후변화 목표 달성, 생물다양성 협약 이행에 있어 국제사회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GS&J인스티튜트는 최근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EU 2014∼2020 CAP의 성과와 한계 및 향후 전망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EU가 곧 공식 발표할 2021년 CAP는 환경 보전조치를 더욱 강화하는 개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며 “향후 환경파괴 농산물의 생산과 교역을 제한하는 규정이 국제적 논의의 대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