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일변도’ 환경부 정책, 농업계와 잦은 충돌
퇴비부숙도 검사 의무화 왕우렁이 생태교란 생물 지정
농업용 저수지 관리문제 등
농업·농촌 관련 정책 놓고 환경부·농업계 갈등 첨예
“충분한 협의 없이 추진 안돼”
#2020년 3월25일부터 퇴비부숙도 검사가 의무화된다. 퇴비를 자가처리하는 농가들이 일정한 부숙도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검사 결과를 3년간 보관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2015년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가축분뇨법)’이 개정되면서 환경부가 추진하는 후속정책인데, 축산농가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환경부는 10월1일 왕우렁이를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하기 위한 행정예고를 했다. 그러면서 10월20일까지 해당 내용에 대한 관련 기관·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런 사실을 10월18일에야 알고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왕우렁이는 제초효과가 탁월해 친환경농업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농업·농촌과 관련한 정책을 놓고 환경부와 농업계가 잦은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의 친환경기조에 맞춰 물관리, 온실가스 감축 등의 업무까지 환경부로 일원화되면서 이런 갈등사례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올 2월 환경부는 금강 세종보와 공주보, 영산강 죽산보의 해체 또는 일부 해체를 권고했지만, 인근 농가들은 물부족에 따른 농업피해를 우려해 반대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회엔 농업용 저수지를 환경부가 관리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도 제출돼 있다. 환경부와 농식품부는 법안이 통과돼도 농업용 저수지가 현행 방식대로 관리된다고 설명하지만, 농업계는 추후 상황에 따라 농업용 저수지의 물을 생활·공업용으로 우선공급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농업계 안팎에선 일부 환경정책이 농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추진돼 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호 단국대학교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왕우렁이나 퇴비부숙도문제는 농식품부가 현장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환경부가 농업에 대한 검토 없이 추진한 면이 있다”며 “농업이 환경에 기여하는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구사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홍길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은 “환경부의 입김이 세다보니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예방을 위해 농업계는 물론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했던 잔반사료 급여금지나 야생멧돼지 개체관리 등의 조치가 효율적으로 시행되지 못했다”며 “그런데도 막상 ASF가 발생한 뒤 책임과 피해는 농가에 돌아오는 상황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농민들이 환경부 정책에 무조건 각을 세우겠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농업·농촌이 지속가능하려면 환경과 생태를 중시하는 생산활동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농민들이 심각한 규제라고 느낄 수 있는 문제를 농식품부나 농민단체 등과 충분한 협의 없이 추진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은 “환경정책이 국민 전체의 관점에서는 필요한 방향이라고 보지만 최근 농업과 관련된 정책은 일방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며 “이해당사자인 농업계와 소통공간을 마련하고, 규제를 하더라도 농민들이 대비하고 해결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농어업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회장은 “농특위에서 공익형 직불제와 축산 관련 의제를 논의할 때도 환경부·환경단체 등의 참여를 요청해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이양수 자유한국당 의원(강원 속초·고성·양양)은 “농식품부는 환경부가 농업 관련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상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신문 홍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