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54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중앙일보 김종윤]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에 들어오지 않게 됐다. 30개월 미만 가운데 머리뼈·뇌·눈·척수의 수입이 추가로 금지됐다. 검역 권한도 강화됐다.

정부가 21일 발표한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만 놓고 보면 국제 통상협상 관례상 이례적인 성과를 거둔 것이다.

협상은 그만큼 힘들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 도중 두 차례나 귀국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결렬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도 있었다. 그는 과학적 근거를 내세워 압박하는 미국 협상단에 맞서 수십만 명이 촛불시위를 하는 사진을 들이대는 전술도 썼다. “이게 과학으로 설명될 사진이냐”는 그의 말은 절박했던 협상 과정을 압축한다.

그 결과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성과를 얻었다는 지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서진교 무역투자실장은 “국제 통상협상의 관례를 깨고 미국으로부터 어렵게 얻어 낸 수정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가가 컸다. 지난 2개월여간 국력 소모가 엄청났다. 정부에 대한 믿음은 광장에 넘친 촛불에 타 사라졌다. 정부 기능은 마비되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렸다. 국론은 갈기갈기 찢겼다.

왜 처음부터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못했을까.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정부 부처 간 견제와 조정을 하는 총괄 시스템이 사라진 탓이 크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협상을 영리하게 끌어 나가지 못했고, 국민 건강 문제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아예 논의에서 배제됐다.

경제 부처의 중심인 기획재정부는 확실한 조정 권한이 없어 처음부터 '강 건너 불구경'을 했다. 4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쇠고기 협상 타결을 밀어붙였던 외교통상부는 뒤늦게 추가협상을 잘 마무리했다며 생색을 냈다.

재정부 관계자는 “대외협상에 앞서 관계 부처끼리 조율은 필수인데, 이번에는 의견을 모으고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단은 미국산 쇠고기의 엄청난 폭발성을 간과하는 실수를 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는 식탁 안전과 반미 감정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예민한 이슈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값싸고 품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됐다'는 식의 안이한 접근으로 일관해 민심의 이반을 불렀다. 그 뒤에도 합의안에 문제가 없다며 재협상을 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다 때를 놓쳤다.

이번 추가협상 결과는 재협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준에 버금간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전문가의 함정에 빠져 굳이 재협상과 추가협상을 구분하면서 “재협상이라는 용어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결과 애써 협상을 해 놓고도 '국민이 원하는 재협상을 외면한 오만한 정부'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서진교 실장은 “국제 협상과 정책 조정에 관한 정부의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뜯어고치는 게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