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적항 검사 의무화로 클레임 제기도 어려워
사료업계 “옥수수 등급 상향·남미산으로 수입선 변경” 추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산 옥수수는 사료 원료 중 최고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남미산과 달리 단단하고 납작해 고압의 스팀에도 이렇다할 형태 변화나 영양소 파괴가 거의 없어 세계 최고였는데, 이젠 미산 옥수수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미산 옥수수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국내 사료업체 모 대표의 말이다.
국내 사료업계가 미산 옥수수 품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파쇄 되는 데다 원료곡에 가루가 과다하게 발생해 한우와 양돈농가들사이에서 사료허실과 기호성 저하로 인한 증체량 감소가 현실화하면서 농가들의 민원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미국산 옥수수의 품질 저하는 지난해 미국내 불순한 일기악화가 직접적인 원인인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의 옥수수 주산지인 중서부지역에 반세기만에 최악의 가뭄이 덮쳤고, 이로 인해 적정시기의 파종과 수확이 지연되면서 생산량은 물론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사료업계 전문가들은 미국산 옥수수 품질 저하의 근본적 원인은 미국 정부의 옥수수 바이오에탄올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 정부는 정유사에서 휘발유 경유 등 차량 연료를 만들 때 일정 비율의 바이오연료를 의무적으로 섞어쓰게 하는 바이오에탄올 혼합의무제도(RFS)를 2005년부터 시행해왔다.
이처럼 에탄올 수요 확대를 위한 미국 정부의 본격 조치가 시행되면서 이에 적합한 옥수수의 종자개량을 서둘러 진행해 왔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미국 정부의 이같은 노력과 정책에 힘입어 옥수수의 에탄올 사용량은 2005년 전체 옥수수 생산량의 14%에서 지난해 60% 수준까지 뛰어 올랐다.
하지만 단위당 수확량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춘 옥수수의 종자개량방식은 알갱이 파쇄문제와 함께 절대적이진 않지만 단백질 함유량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일부에선 코로나19로 인한 국제 유가 급락으로 바이오에탄올의 마진과 수요가 크게 감소하며 사료용에 적합하지 않은 등급의 옥수수가 대거 반입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2018/19년 대비 2019/20년 미국 내 바이오에탄올 소비는 1100만톤 가량 감소했다. 이는 연간 한국이 수입하는 옥수수 수입량과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량이다.
미산 옥수수 ‘3등급→2등급’으로 상향 추진
미국산 옥수수에서 비롯된 사료 품질 문제가 쉽게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국내 사료업계도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곡물거래는 국제무역 관련규정에 의거해 ‘선적항 검사결과’를 최종 조건으로 적용하고 있어 미국측에 공식 클레임을 걸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산 곡물의 경우 선적지 검정은 미농무부 산하 검정기관인 FGIS만이 검정작업이 가능하는 등 화주와 화주대리인의 입회자체가 불가하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사료협회가 '하역항 검사결과'를 최종 조건으로 입찰을 내걸었을 당시 주요메이저 곡물업체들은 한국에 대한 사료원료 판매중단을 선언했었다. 올해들어선 지난 7월 22일 농협사료가 국제곡물의 하혁항 검사결과를 최종조건으로 내세워 입찰에 부쳤으나 입찰참가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수입국과 공급사쪽 모두에 이렇다 할 클레임을 제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내 사료업계는 현실 가능한 수준에서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카길그룹의 경우 옥수수 구매처를 미국산에서 남미산으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사료는 미산 옥수수의 구매등급을 현행 3등급에서 2등급으로 상향 조정해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남미산 위주로 원산지를 지정구매 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방경철 농협사료 외자구매부장은 지난 7월 28일 천안축협에서 열린 축협배합사료가공조합장협의회에서 “국가별 수확시기가 달라 원산지 지정 구매가 원활치 않을 수 있지만 시장상황과 가격차이를 고려해 등급이 상향 조정된 미산 옥수수의 원료구매와 함께 남미산 위주의 옥수수를 지정구매하는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미국산 옥수수를 실은 7만톤 규모의 선박이 평택당진항에 정박해 있다.>
미산 옥수수 문제...사료값 상승으로 이어질까 '우려'
미국산 옥수수의 품질문제는 지금 당장 현실화하고 있는 가축들의 증체량과 기호성 저하 등의 피해는 물론 원료곡 상승에 따른 사료가격 상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되고 있다.
남미산 옥수수의 경우 톤당 최소 3~10불 이상의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하는 데다 기존의 미산 옥수수를 그대로 사용할 경우 단백질 함량저하를 보완할 수 있는 대체원료나 첨가제 추가 사용 등이 불가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수수의 단백질 함유량이 감소하면 가격이 높은 대두박 등의 함유량을 늘려 단백질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사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여기에 한국과 같이 현재 3등급 규격의 옥수수를 수입하는 일본에서도 등급 조정을 고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단일국가로는 세계 2위, 3위의 옥수수 수입국가인 일본과 한국의 곡물 수입경쟁으로 가격이 더욱 상승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당분간은 사료용 옥수수 품질로 인한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8월부턴 미산 옥수수의 수확과 수입시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남미산 수입이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산 옥수수로 인한 클레임과 문제는 올 연말까지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내년 2/4분기 미산 옥수수 수입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또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커 사료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출처 : 팜인사이트(http://www.farminsigh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