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억원 기부키로 한 사료협 회원사들 사실상 납부 '거부'
축산업계 “애당초 잘못 키워진 단추... 반면교사 삼아야”
축산관련단체가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온 축산회관의 세종 청사 이전 계획이 결국 철회됐다.
축산단체들은 사료업계가 조성‧기부키로 한 ‘상생발전기금’을 주요 재원으로 신 축산회관의 건립과 이전을 추진해왔으나 사료회사들이 당초 약속한 100억 원의 상생기금 기부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계획은 불발됐다.
지난 3월 24일 열린 축산회관 이전을 위한 축산단체대표자회의에서 축산단체들은 이전부지로 계약한 토지대금의 추가 납부가 불가한 상황을 인정하고 축산회관 이전 건립문제를 중단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지었다.
1백 억 원 조성 계획 중 25억만 납부
축산관련단체들이 세종시 이전을 포기한 직접적 배경은 한국사료협회 회원사들에 있다.
사안은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 담합을 한 11개 사료회사들에게 7백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료회사들의 과징금 담합 의혹은 2년 뒤 인 2017년 공정위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는 등 ‘협의 없음’으로 끝났지만 이 과정에서 축산단체들의 탄원이 적잖이 작용했다는 게 축산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사료회사들이 당시 축산단체들의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100억 원의 지정기부를 약속한 것도 ‘탄원서’ 제출과 무관치 않다.
사료협회는 축산업계와 농가의 동반자로서 국내 축산업의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위해 축단협, 농협중앙회와 함께 2015년 11월 MOU를 체결했다.
축산회관 이전을 위한 일종의 시드머니격인 1백 억 원 조성을 약속하는 일종의 양해각서였던 셈이다.
하지만 사료협회 회원사들은 공정위와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6년 5월에만 25억 원의 상생기금을 기부했을 뿐 약속했던 나머지 75억 원은 현재까지 납부하지 않았다.
사료회사들의 약속을 믿고 2017년 세종 정부청사 인근에 부지를 매입한 축산단체는 결국 오는 4월 10일 도래하는 부지 매입 할부금의 조달방법을 찾지 못한 상황에 이르면서,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
축산단체와의 약속 ‘헌신짝’ 버리듯
사료회사와 축산단체들의 빅딜격인 탄원서 제출과 관련해선 애당초 잡음이 많았다.
아직까지도 축산단체 내부의 보이지 않는 앙금으로 남아 있는 이 문제는 피해당사자인 축산농가들을 대변할 축산생산자단체가 외려 사료회사편을 들고 나선 형국이어서 축산생산자단체의 존립목적과 배치된다는 내부 반발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한우협회(회장 김홍길)는 축단협 행보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료값 담합’을 둘러싸고 축산단체간 깊은 내홍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사료협회 회원사들를 위한 탄원과 상생기금 모금을 위한 MOU 체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상황은 비관적으로 흐르게 됐다.
2017년 5월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사료 값 담합 무협의를 받은 사료회사들은 그 이후로 한 단푼의 상생기금을 납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축산단체대표들은 “아무리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지만 축산단체와 상생을 약속하며 MOU까지 체결한 사료업계가 축산농가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고 맹비난했다.
어떻게 해서든 신 축산회관의 부지 매입 계약을 이행하고자 했던 축산단체들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사료협회측과 면담을 갖고 설득에 나섰지만 끝내 추가 납부는 이뤄지지 않았다.
갈수록 영업환경이 악화일로에 있는 사료업계 경영 여건상 더 이상의 상생기금 납부는 어렵다는 게 사료협회측의 공식 입장이지만 사료업계 입장에선 75억 원의 기금을 더이상 납부할 이유가 없어졌기에 사실상 거부수순을 밟은것으로풀이된다. '자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기업 입장에서 축산회관 이전 문제는 회사의 이익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로 인식했던 것이다.
계약해지에 따른 반환금...어떻게 될까
축산회관 건립 부지의 토지 할부금은 앞으로 15억4800만원이 남아있지만 현재 상생기금은 2017년 농협사료가 납입한 3억 원의 기금을 합해도 43만7천원이 전부인 상황이다. 당장에 오는 4월 10일 4차 할부금을 납입할 상황에서 할부금 7억7400만원은 물론 하루치 지연손해금이 25만4천원에 달하는 등 축산단체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축산회관 이전을 위한 축산생산자 11개 단체는 지난 3월 24일 회의를 열어 축산회관 이전 중단을 결정했다.
결국 자금 부족으로 인한 회관 이전 중단 사태에 이르게 되면서 계약해제에 따른 반환금 문제가 남게 됐다.
세종시와 11개 축산관련단체간 계약 해제로 보증금 4억3천만원을 비롯해 약 6억 원의 손실금이 발생하게 된 가운데 남은 반환금의 용도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다.
사료회사들이 납입한 상생기금은 증여세 절감 을 위해 알려진것처럼 축산단체를 대신해 나눔축산운동본부가 기금을 기부 받아 계약을 이행해왔다.
하지만 현재 축산단체 내부에선 당초 사료회사들이 내놓은 상생기금을 ‘갚아버리자(되돌려주자)’는 의견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게 될 경우 나눔축산운동본부는 당초 면제됐던 9억6천 만 원의 증여세를 납입해야 해서 목적외 사업 추진으로 인해 설립허가 취소에 이르게 된다.
축산단체들, 이제라도 ‘떳떳한 목소리 낼 것'
축산단체들이 사료회사에 기금을 돌려주자는 주장을 내놓은 것은 이제라도 생산자단체로서 떳떳한 목소리를 내자는 입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홍길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은 “애당초 담합 의혹을 받고 있는 사료회사들의 입장을 대변해 탄원서를 제출하고 기금을 받는다는 것은 축산단체의 존립 목적과 맞지 않았다”면서 “대가성이 짙은 사료회사들의 기금을 축산단체가 사용한다는건 옳지 않다고 본다”며 사료회사들에게 반환금을 돌려주자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도 “축산회관 이전 중단으로 생긴 기금은 축산단체가 협의해서 쓸 수 있는 자금이 아니다. 사료협회로 다시 귀속시키는 것이 맞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료협회나 업체로 반환금을 귀속시킬 경우 증여세 문제에 따라 ‘나눔축산운동본부’의 존립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축산단체대표들 역시 나눔축산운동본부가 축산회관 이전문제로 인해 피해를 보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반환금의 처리 문제'는 축산단체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나눔축산운동본부 역시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는 ‘최대공약수’를 찾는 과제로 남게됐다.
애당초 잘못 끼워진 단추...반면교사 계기 삼아야
사료업계는 함께 공조해야 할 최대 파트너인 축산단체와의 약속을 저버리면서 도의적 책임과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지만 갈수록 경영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75억원에 달하는 기금납입을 ‘면제’ 받게 된 상황이 마냥 싫지만은 않아보인다.
단순한 축산회관 이전 문제만을 놓고 보면 축산단체와 소속 직원들에겐 외려 ‘전화위복’의 상황이 됐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회관 이전 문제는 당시 축단협을 이끌던 임원들과 농식품부 축산국 고위 공직자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됐지만 이전에 따른 구체적 재원 조달 계획은 물론 축산단체 직원들의 이직문제와 주거문제 등 이전으로 인해 파생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답안을 좀처럼 찾지 못했었다.
더욱이 축산단체의 경우 적게는 수년에서 많게는 수 십 여년의 경력을 갖고 산업과 농가를 폭넓게 이해하며 업계를 대변하는 전문가들 집단으로 구성된 단체인데, 만약 직장 이전으로 인해 축산단체 직원들의 대거 이직 또는 사직이 현실화 할 경우 심각한 업무 공백이 우려되고 있었다.
사통발달이 연결된 서울의 경우 전국의 축산 농가들의 접근이 수월한 방면 이전 예정이었던 세종시의 경우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적잖은 문제였던 데다, 농식품부를 제외한 협력회사들과의 동선거리도 멀어질 수밖에 없어 업무 효율성도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게 축산단체 내외부에서 감지되던 기류였다.
실제로 올해 농식품부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사무실을 안양에서 오송으로 이전한 육계협회의 경우 이전에 따른 명확한 득실을 계산하지 못한 체 이전을 감행하면서 장거리 출퇴근에 따른 업무시간 단축과 이로 인한 업무 효율저하, 교통비 보전으로 인한 비용 상승, 국회를 비롯한 협력사와의 소통약화 등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치면서 해결 방안 모색에 골몰하고 있다.
축산업계 한 관계자는 축산회관 신축을 둘러싼 금번 사안과 관련해 “축산단체와 사료업계와의 신뢰가 크게 무너져 금이 간 것은 축산업계 전체로 봤을 땐 득보다 실이 크지만 축산단체단체 내부에서의 보다 진지한 토론과 검토, 직원들의 생각과 이전을 둘러싼 득실을 치밀하게 따지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한 축산회관 이전문제 무산에 대해 그간의 과정을 겸허히 성찰하며 반면교사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팜사이트 옥미영기자